참여/소식
국유정담

장독은 부엌에 가깝고 햇볕이 잘 드는 뒤뜰이나, 아니면 앞뜰 우물가 가까운 양지바른 곳에 돌단을 높직하게 쌓아 공터를 만든 뒤 위에 놓았다. 예전에는 장독대의 옹기 개수로 그 집 살림살이의 규모를 가늠하기도 했고, 장독대의 관리 상태로 그 집 여인들의 살림 솜씨를 판단하기도 했다. 부잣집이나 솜씨 좋은 안주인의 장독은 윤기가 난다고 했다. 그런데 장독으로 쓰는 옹기를 반질반질 깨끗하게 닦는 것은 그저 눈을 즐겁게 하자고 하는 일이 아니다. 먼지 때문에 옹기의 숨구멍이 막히지 않도록 여자들은 틈날 때마다 옹기를 닦았다. 숨구멍이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공을 들였는가 싶겠지만, 김치며, 젓갈이며, 장이며 갖가지 발효 식품이 썩지 않고 발효되는 비밀이 바로 이 숨구멍에 있다. 옹기에는 미세한 숨구멍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옹기 조각의 단면을 전자 현미경을 사용하여 1500배 이상 확대하여 살펴보면 미세한 숨구멍을 볼 수 있다. 흙 속의 모래성분에 의하여 표면에 유약이 함몰되거나 밖으로 튀어나온 사이로 생겨난 작은 구멍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작은 숨구멍들을 통해 산소와 햇빛이 들어가기 때문에 젖산균을 비롯한 좋은 균들이 숨을 쉴 수 있다. 균들의 활약으로 김치, 젓갈, 장 등이 맛있게, 영양 있게 숙성된다. 숨구멍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이런 식품들을 옹기가 아닌 자기에 보관하면 발효는 커녕 그냥 썩어버리기 십상이다.
옹기는 숨을 쉬는 과정에서 잡물을 빨아들여 기벽에 붙게 하거나 바닥에 가라앉게 만들어 물을 맑게 한다. 기공이 숭숭 나 있는 몸체는 수분을 빨아들여 밖으로 기화시키면서 열을 발산하여 그 속에 담겨 있는 물을 항상 시원하게 해준다. 실제로 내용물의 온도는 바깥 온도보다 약 5도에서 10도 낮은 차이를 보이게 된다. 결국 청자나 백자와 같은 단단하고 물을 빨아들이지 않는 자기질에 비하여, 약하지만 물을 잘 흡수하는 질그릇이 물을 보관하는 데에는 더 유리하며, 물이 오랫동안 썩지 않게 하는 역할까지 한다. 이러한 이유로 예전에 좋은 물을 구하기 어려웠던 시골에서는 옹기에 물을 넣어 일주일 정도 놓아두어 물속의 불순물을 옹기 벽에 달라붙게 한 뒤 맑은 물만 걸러 먹었다. 첫눈을 받아 담가 먹었다던 설안주(雪眼酒) 역시도 눈을 옹기에 넣어 눈 속의 불순물을 정제해서 만든 술이다. 예전에 새 옹기를 사면 먼저 된장 독으로 사용한 뒤 한두 해가지나고 나서야 장독으로 사용했던 것도 숨구멍 때문이다. 새 옹기에 간장을 넣었다간 꽤 곤란한 경우가 생기는데, 숨구멍을 통해 간장이 스멀스멀 스며나와 옹기 표면에 땀이 맺히듯이 간장이 맺히는 것이다. 이렇게 없어지는 간장의 양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예전에는 된장을 새 옹기에 넣어 된장의 염분 등이 구멍을 어느 정도 메우도록 했다. 이렇게 1~2년 정도 된장 독으로 쓰고 나면 간장과 같은 액체는 새지 않으면서도 공기는 드나들 수 있는 크기의 숨구멍들만 남았다.
숨구멍의 비밀
숨구멍의 비밀 중 하나는 옹기를 빚을 때 쓰는 흙에 있다. 자갈과 모래가 들어 있는 거친 흙으로 옹기를 빚어 가마에서 1100도 이상으로 구우면 고온에 모래 알갱이 등이 녹으면서 기포가 만들어지고, 이때 생긴 미세한 공간들이 옹기의 숨구멍이 된다. 그런데 흙을 정제하지 않은 채 쓰기 때문에 옹기장이들이 물레를 찰 때 손을 베이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옹기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통틀어 가리키는 것이다. 옹기는 900도 이상으로 굽고 잿물을 바르지 않아 윤기가 없는 질그릇과 1100도 이상으로 굽고 잿물을 발라 윤기가 있는 오지그릇, 두 가지로 나뉜다. 질그릇으로는 기와나 시루, 오지그릇으로는 항아리, 뚝배기, 약탕기 등이 있다. 가마에 굽기 전에 바르는 잿물 유약도 중요하다. 빨간색이나 짙은 갈색 같은 진한 색의 유약을 발라 햇빛을 잘 흡수하고 공기가 잘 순환되도록 한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때 이 잿물 유약 대신 광명단 이라는 화학 성분 유약이 맹위를 떨치면서 전통 옹기가 고사할 뻔한 적이 있다. 표면에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지르르 윤기가 도는 데다 잘 깨어지지도 않고 무엇보다 값이 쌌기 때문에 광명단 옹기는 근대에 들어와 장독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광명단 옹기는 가짜다. 인체에 유해한 납 성분이 유약성분에 포함되어 있어 인체에 치명적이며 숨구멍 같은 건 기대도 못하니 발효에 도움이 될 리도 없다. 다행히도 1980년대부터 잿물 유약을 바른 전통 옹기가 부활했지만, 지금도 광명단 옹기들이 화려하면서도 값싼 매력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으니 옹기를 살 때에는 광명단 옹기인지 전통 옹기인지 정도는 구별할 줄 알아야겠다.
우리나라 옹기의 우수성은 다양한 용도나 단순하면서도 조형적인 아름다움 외에도 옹기를 제작하는 기술적인 면에서 나타난다.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독이 생산되기는 하지만 만드는 방식에서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 외국의 도예가들은 그토록 짧은 시간에 커다란 옹기를 만들어내는 우리나라 옹기 기술에 대하여 상당히 놀라워한다. 동시에 우리나라 옹기를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한다. 이는 우리가 우리만의 독특한 기술을 개발해왔기 때문이다. 이렇듯 옹기 제작 기술이나 유약, 굽는 방법에도 첨단 기술을 방불케 하는 갖가지 아이디어가 우리 옹기 여기저기에 담겨 있다. 그런데 이렇게 다재다능한 옹기가 요즘엔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 것 같다. 어느 집에나 한 대씩 갖고 있는 김치냉장고 덕분에 김치를 독에 넣는 대신 플라스틱 통에 넣게 되었고, 된장이나 간장도 플라스틱 밀폐 용기에 넣어두는 집이 한둘이 아니다. 도시 주택이나 아파트 등의 현대 주거 공간에서는 전과 달리 장독대 설치가 쉽지 않고, 옹기보다는 플라스틱이나 금속 용기를 사용하는 것이 간편하기 때문에 옹기 문화가 사라지는 실정이다. 그러나 옹기는 조형성만으로도 물질문명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고향의 장맛 같은 향수를 일깨워주기도 하며 우리 밥상의 주인공은 여전히 발효식품인 만큼 옹기를 외면해서는 안 되겠다. 발효식품의 영양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려면 옹기만 한 게 없으니 말이다. 좋은 옹기 마련해 놓고 뿌듯해하며 아침저녁으로 옹기를 닦던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 안에 건강의 비밀이 숨어 있었음을 상기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글˚최웅철 (아트디렉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