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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3월 - 신화와 문화적 상상력 뱀의 신화적 기능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3-12-12 조회수 : 9402

 

 

올해는 계사년(癸巳年)으로 뱀의 해다. 자연계의 열두 가지 동물로 해를 표시하는 소위 12지신(支神)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고대의 동물 토템신앙-모종의 동식물 혹은 자연물이 자신의 부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를 수호신으로 삼아 숭배하거나 혹은 부족을 서로 구분하는 명칭이나 표지로 삼는 원시종교-과 천문학의 천문현상이 서로 결합됨으로써 십이지신이 생성되었다는 설이 비교적 설득력이 있다. 고대인들이 이러한 토템숭배의 영향을 받아서 하늘의 별자리의 위치를 관찰할 때에 늘 익숙했던 동물의 명칭으로 그것을 명명했던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열두가지 동물로 해를 표시하는 것은 비단 중국에만 존재하는 문화현상은 아니고,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도 고양이, 개, 뱀, 사마귀, 당나귀, 사자, 숫양, 소, 원숭이, 새매(隼), 홍학, 악어 등 모두 열두 가지 동물로 해를 기록한 것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때문에 이러한 전통은 원시의 동물숭배에서 기원하여서 민족이 살던 지리적 환경에 적합한 동물들 위주로 선정되었을 뿐 커다란 의미는 없다고 본다.


뱀은 누가 보아도 대단히 혐오스러운 동물이다. 때문에 문화권에 따라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조되어 악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구약성서 창세기에서 뱀은 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한 동물이다. 바로 악의 상징이자 유혹자다. 인류 최초의 여인 이브는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먹고 신의 노여움을 사서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였다. 그리고 인간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땀을 흘리고 노력해야만 하였고, 그리고 서로가 미워하고 고통을 느끼는 원죄자로서 살다가 마침내 죽어야만 하는 운명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 로마 신화는 물론 중국 신화를 비롯한 세계의 신화 속에 등장하는 뱀은 매우 긍정적인 이미지와 함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뱀이 상징하는 의미는 매우 다층적이나 그 중 몇 가지만을 가려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가장 먼저 지혜의 상징이다. 선악과는 문자 그대로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과실이다. 하느님께서는 에덴동산의 모든 과일을 먹어도 좋지만 유독 선악과만은 먹지 못하게 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구분할 줄 알게 될 것을 걱정하였기 때문이다. 뱀은 이브가 하느님의 계율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함으로써 눈이 열려 알몸으로 벌거벗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비로소 신의 품을 벗어나 선과 악의 구분하고 판단할 수 있으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이성과 지혜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신약성서에서 예수님이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양순해라”라고 가르치신 것은 바로 뱀이 인간에게 지혜를 가져다준 공로를 인정했기 때문이 아닐까?


다음으로 뱀은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다.

그리스 신화의 헤라(Hera)는 주신 제우스(Zeus)의 아내로 올림포스 모든 여신 중 가장 지위가 높은 여신이다. 그녀는 히드라(Hydra)섬의 물뱀 레르나이아(Lernaia)와 세상의 서쪽 끝인 에스페리스(Esperis) 지방의 황금 사과나무 정원을 지키는 뱀인 라돈(Ladon)을 손수 키웠다. 헤시오도스에 의하면 헤라는 제우스가 정식 결혼으로 얻은 세 번째 아내였다. 이들의 결혼식은 영원한 봄 가운데 있는 헤스페리데스(Hesperides)의 정원에서 열렸다. 그리고 가이아(Gaia, 대지)가 헤스페리데스의 황금 사과를 결혼 선물로 헤라에게 선물하였으며, 제우스는 밤의 신의 네 딸 과 백 개의 머리가 달렸으며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잠자는 일이 없는 뱀인 라돈(Ladon)을 파견하여 이 황금의 사과나무를 지키도록 하였다.
 

최고의 여신 헤라가 뱀을 손수 키우고 그녀가 키운 뱀은 대지 그 자체이자 모든 신의 어머니 가이아가 선물한 황금의 사과나무를 지킨다. 헤라와 뱀과의 관계는 대지가 가지고 있는 생명의 원초적 에너지와 더불어 다산의 신화적 상징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 가운데는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을 하고 있는 인수사신(人首蛇身)의 형상이 대단히 많다. 대표적으로 인류창조의 여신 여와(女媧)를 비롯하여 여와와 부부로 그려지고 있는 복희(伏羲) 그리고 홍수의 신 공공(共工)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인류의 생명의 기원 그리고 재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신들이다. 특히 여와가 황토로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과 연계되어 대지가 가지고 있는 생명의 힘, 번식과 생육의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뱀은 또 재생과 불멸의 상징이다.

구급차나 병원을 상징하는 표상에 뱀이 휘감긴 지팡이가 그려져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지팡이는 생명의 나무이고, 뱀은 재생과 불멸을 나타낸다. 그리스 신화에서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는 태양신 아폴론의 아들로 아버지에 의해서 켄타우로스(반인반마) 케이론에게 맡겨져 의술을 배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술에 능통하게 되어서, 심지어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방법까지 발견하였다. 그리고 전장에서 죽은 많은 용사들을 살려낸다. 그가 살려낸 사람 중에는 미노스(Minos)의 아들 글라우코스도(Glaucus) 있다. 글라우코스는 어렸을 때 쥐를 쫓아가다가 꿀을 저장해 둔 항아리에 빠져 죽었다. 미노스의 간청에 의해 아스클레피오스가 미노스를 살펴보고 있는데 뱀 한 마리가 기어 들어와 시체 쪽으로 향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혹시나 뱀이 시체를 먹거나 해를 가할 것이 두려워 들고 다니던 지팡이로 내리쳐 그 뱀을 죽여버렸다.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뱀이 들어와 죽은 뱀을 발견하고는 밖으로 나가 약초를 물고 돌아왔다.

 

그러고는 그 약초를 죽은 뱀에게 갖다 대자 죽은 뱀이 되살아났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그 약초를 빼앗아 글라우코스를 문질러주었고, 그러자 그 역시 생명을 되찾게 되었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인간을 부활시키는 것 을 지켜보던 제우스는 그가 인간 세계의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을까 걱정스러워서 벼락으로 내리쳐 그를 죽인다. 죽은 아스클레피오스는 뱀을 양손으로 잡고 있는 사람 모양의 별자리 즉 땅꾼자리로 변했다. 이후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의 신으로 받들어져 신전이 만들어졌고, 이 신전을 지키던 신관은 이 신전에다 흙빛 뱀을 기른 것으로 전해진다. 신관들은 독이 없는 흙빛 뱀을 아스클레피오스의 사자(使者)로 여겼기 때문이다. 의료기관의 휘장에 막대기를 휘감고 있는 뱀이 그려진 것은 이 때문이다.(이윤기, <그리스 로마신화>, 웅진, 2000) 한나라 때의 사당이나 관의 덮개에는 뱀의 모습을 한 복희(伏羲)와 여와가 서로 뒤얽혀 교미를 하고 있는 그림이 다수 등장한다. 이는 뱀이 가지고 있는 탈피와 재생이라고 하는 속성과 관련하여 죽은 자들의 영혼이 불멸하기를 기원했던 사람들의 염원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김선자, <중국변형신화의세계>, 범우사, 2001)


마지막으로 뱀은 재앙의 예고자이기도 하다.

<산해경>에는 뱀을 포함한 수많은 동물과 인간이 합체된 신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출현하게 되면 홍수나 가뭄의 재해가 나타난다고 적고 있다. 뱀을 비롯한 동물이 가지고 있는 자연변화에 대한 예지력이 신화 속에 그대로 투영된 것으로 이해된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계사년 뱀의 해에는 뱀이 가지고 있는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와 이성’의 능력을 우리 모두가 배워서, 우리 사회의 모든 구악이 일소되어 맑고 밝은 사회를 만드는 데 우리 모두가 동참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나아가 세대간, 계층간, 지역간의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이 땅에 사는 보람을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사람이 근본이 되는 나라를 만드는 데 우리 모두가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바란다. ‘다산과 풍요의 생명력’을 빌어서 우리 국민 개개인이 보다 넉넉하고 여유 있는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국가 경제 역시 더욱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뱀이 가지고 있는 ‘재생과 불멸의 힘’을 통해서 우리 국민 모두가 건강하기를 바라며, 나아가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하루다도 앞당길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뱀이 가지고 있는 ‘재앙 경고의 예지력’을 배워서 올 한 해 어떤 재난과 재해도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선정규 (고려대학교 중국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