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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가을, 겨울호-전국 노래자랑]신라의 향가로부터 밀양아리랑까지 경상도의 노래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5-03-11 조회수 : 299

신라의 향가로부터 밀양아리랑까지 경상도의 노래

 

. 박소현(영남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영남권에서 사라졌다고 인식되어 온 팔공산제를 바탕으로 맥을 이어 오고 있는 경상남도 무형유산인 밀양 작약산 예수재(2019년 지정)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박황은 판소리소사에서 소리는 남을 즐겁게 하거나 감화를 주기 위한 객관적인 예술이고, 노래는 스스로가 내 소감을 겉으로 나타내는 주관적인 예술이라고 했다. 전래 민요는 산간 농어촌 민간에서 의식주와 관련된 춤과 놀이와 함께 모든 정서 생활을 표현하는 풍토였다. 그들은 비록 이름 없는 무명씨였을지라도 전하는 노래는 오늘날의 예능으로 예상치 못한 전통 문화 예술의 토대가 되었으며, 이제 전 세계적인 K-컬처로서 한민족의 찬란한 문화 예술인 것이다. 여기서 경상도 노래의 저력을 알아본다.

 

 

상고 시대 이래, 경상도의 노래

상고 시대 이래, 경상도의 노래는 수천 년 동안 전승 발전되어 모찌기, 모심기, 김매기를 할 때 부르는 노래인 정자소리와 나무꾼이 산에 나무하러 가서 부르는 노래인 어사용등 특이한 민요를 많이 내었고, 근래에는 <밀양아리랑>, <쾌지나칭칭나네>와 같은 민요가 전국적으로 불리고 있다.

정자소리는 지역에 따라 모노래’, ‘모정자’, ‘등지’, ‘등개등의 이름으로도 불리며, 진실한 소리라는 뜻에서 정자(正字)소리라는 주장과 정자나무 아래 정자에서 편히 영화를 누린다는 뜻에서 정자(亭子)소리라고 한다는 설이 있어 정확한 연원은 알 수 없다. 다만, 이앙법이 시작된 고려 말에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어사용은 어새이라고도 하며, 한자 용어로는 초부가(樵父歌)’라고 한다. 길게 빼는 구슬픈 곡조로 산간 지방에서 들을 수 있는데, 특히 경상북도 태백산맥 지역인 영양·영덕·청송·영천 등지에서 조사 된 자료가 풍부하다. 어사용은 주로 머슴들이 불렀는데, 산에 가서 나무를 하노라면 늦도록 장가도 가지 못하고 고생만 하는 신세가 더욱 서러워 신세 한탄을 하는 노래인데, 국문학자 조동일은 경북 민요(1977)에서 길게 빼는 구슬픈 곡조가 메나리토리와 상통한다라고 했다.

메나리토리는 한반도 동부 지역에서 전승된 민요(民謠), 무가(巫歌), 기악(器樂) 등에 주로 나타나는 음악성을 설명하는 용어로 메나리조(調)라고도 한다. 이병원은 한국 범패형식을 통한 고대음악 형식의 연구(1981)에서 우리나라[노래]에는 장인(長引) 하고 굴곡이 많은 것이 향토민요에는 거의 없다라고 했는데, 한만영은 한국전통음악연구(1991)에서 메나리조는 대개 무반주로 일정한 장단이 없고 그 리듬도 일종의 자유 리듬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장단 리듬이 없고 한배가 느린 소리는 흡사 범패를 연상케 한다라고 했다. 또한 이해식은 경상도쪼 민요의 통시성과 토속성(1995)에서 경상도 지방의 들노래 중에서도 문경의 논매는 소리<긴소리>는 메나리조로 되어 있고 일정한 장단이 없이 느리게 길게 부른다라고 했다.

이렇게 국악 학계 거장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경상도의 노래는 불교 의식 음악으로 전하는 범패와 비교될 수 있겠다. 이는 신라 시대로부터 계승된 향가(鄕歌)의 음악적 유전일 수도 있다.

 

 

신비(神祕)로운 노래, 신라의 향가(鄕歌)

신라 음악의 중심지였던 경상도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와서 지방 음악으로 밀려났지만, 신라에는 향가가 있었다. 향가는 삼국시대에 우리말로 사뇌가. 향가는 향찰(鄕札)로 기록한 신라 시대의 노래로 민요적인 또는 불교적인 내용으로 작가층은 승려, 귀족, 평민에 걸쳐 다양했다. 향가는 신라 건국 초기에 그 중심지인 경주 지방에서 널리 불린 구전민요를 토대로 새롭게 발생한 도시서정가요 형식 의 하나로 볼 수 있으며, 초기 작품은 <도솔가(兜率歌)>를 꼽을 수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하는 향가 <도솔가>에 얽힌 일화는 이렇다. 신라 시대 경덕왕 19(760) 4월 초하루 괴변(怪變)이 있었는데, 해가 둘이 나타나서 열흘 동안 없어지지 않으므로 왕명에 따라 연승(緣僧)으로 뽑힌 월명사(月明師)가 꽃을 뿌리며 부처를 공양하는 산화공양(散華供養)을 하면서 <산화가(散花歌)>도 부르고, <도솔가>를 지어 부르자 그 괴변이 곧 사라졌다.

 

오늘 이에 산화(散花) 불러 今日此矣散花唱良

뿌린 꽃이여 너는 巴寶白乎隱花良汝隱

곧은 마음의 명() 받아 直等隱心音矣命叱使以惡只

미륵좌주(彌勒座主) 뫼셔 나립(羅立)하라 彌勒座主陪立羅良

- 양주동의 조선고사연구(1942) 중에서

 

<도솔가>의 내용을 보면, 미륵좌주는 미래불로서의 석가모니불에 이어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를 모시는 단을 모아 놓고 이 노래를 불러 미륵불을 맞이하려고 한 것이다. 떨기 꽃을 통하여 미륵불을 모시겠다는 뜻이므로, 전형적인 찬불가(讚佛歌).

<도솔가>의 작자 월명사는 능준대사(能俊大師)의 문인이며, ‘국선(國仙)의 도()’에 속했다. 피리를 잘 불어 달의 운행을 멈추게 했다는 주술 같은 이야기도 전하는데, 경주시 배반동 낭산 남쪽 기슭에 있던 사찰로 문무왕 19(679) 8월에 창건된 신라의 대표적인 호국사찰 사천왕사(四天王寺)’에 있을 때, 달밤에 피리를 불면 달마저 그 소리에 가기를 멈추어 그 길을 월명리(月明里)라 했다는 일화가 있다.

월명사가 지은 향가는 <도솔가> 외에도 죽은 누이를 위해 지은 <제망매가(祭亡妹歌)>도 유명하다. 죽은 누이의 제사를 올릴 때 <제망매가>를 지어 불렀더니, 돌연 바람이 일어 누이의 저승길에 노자로 바친 지전(紙錢)을 날려 서쪽으로 사라지게 했다는 일화다.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1946)에서 향가를 신비로운 노래라고 했는데, 사람의 힘이나 지혜 또는 보통의 이론이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묘한, 비범한 일이 향가를 통해 전하기 때문이다.

신라 시대 향가는 창작 경위를 알 수 있는 설화가 상당수 보이지만, 다수의 작품은 기록뿐이고 전하지 않는다. 주술적 차원에서 향가를 보는 관점에 따르면 도솔가, 서동요, 혜성가, 원가, 처용가등이 주사로서의 은유 원리를 갖춘 주가(呪歌)라고도 한다. 이 중에서 <처용가>처용무로서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까지 음력 섣달그믐날에 묵은해의 마귀와 사신을 쫓아내려고 베풀던 나례(儺禮) 의식에서 연행되었으며, 오늘날에도 12월 동짓날이 되면 전국 공연장에서 주요 레퍼토리로 연행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2009년 등재)이자 국가무형유산(1971년 지정)인 처용무

출처: 국가유산진흥원

 

 

고려 가곡의 명기명창(名妓名唱) 적선래(謫仙來)

고려 시대 충렬왕(忠烈王, 1236~1308) , 경상남도 양주[양산시] 출신의 문신인 김원상(金元祥, ?~1339)이 과거에 급제한 후 주부로 있다가 얼마 후에 좌승지(左承旨)에 제배되었고, 다시 지신사(知申事)가 되어 승승장구하게 된 일화에는 명기명창 적선래가 있었다.

충렬왕 당시 오잠(吳潛)은 관현방(管絃坊)과 대악서(大樂署)에 재인(才人)이 부족하다고 여겨, 행신(倖臣)을 나누어 파견해 각 도의 기생 가운데 미모와 기예가 빼어난 자를 선발했다. 또 개경의 무당과 관비 가운데 노래와 춤을 잘하는 자를 뽑아 궁중에 소속시키고, 이들에게 비단옷을 입히고 말총 갓(馬尾笠)을 씌워 따로 한 무리를 만들어 남장별대(男粧別隊)’라 칭하고 새로운 노래를 가르쳤는데, 김원상이 <태평곡(太平曲)>을 새로 지어 고향인 양주의 명기명창인 적선래에게 익히게 하고, 어느 날 궁중 잔치에서 이 노래를 부르게 했다.

 

왕이 시샘으로 낯빛이 변하면서 말하기를, “이 노래는 글을 잘 아는 자가 아니면 지을 수 없는 곡인데, 누가 지은 것이냐?”라고 물었다. 적선래가 대답하기를, “첩의 오라비 김원상과 박윤재가 지은 곡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기뻐하여 말하기를, “이 같은 재주를 가진 자는 기용하지 않을 수 없도다라고 하며 김원상을 통례문지후(通禮門祗候), 박윤재를 권무(權務)로 삼았다.

- 고려사』 「열전권제38, 간신(姦臣) 김원상 중에서

 

김원상이 충렬왕 초기부터 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잠, 석천보(石天補), 석천경(石天卿) 등과 조직한 남장별대의 기생들에게 가곡 <태평곡>을 지어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가수로 이름난 기생 적선래가 빼어난 가창력으로 노래했기에 김원상이 역사에 남아 있지 않았나 한다. 또한 적선래는 김원상에 의해 고향을 떠나 입궁해 고려 후반기에 여성 가수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2010)이자 국가무형유산인 가곡(1969년 지정) 보유자 조순자 명인

가곡은 경상북도와 대구광역시 무형유산이기도 하다. 조순자 명인의 가곡전수관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원동에 있다.

출처: 국가유산청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메나리토리, 경상도 음악 문화

경상도는 산세가 웅장해 그 음악도 꿋꿋하다고 한다. 이보형은 이른바 메나리토리 음악 문화권이 갖는 함경도, 강원도, 경상도에 이르는 음악 문화의 근원적인 음악 문법과 따뜻하고 수려한 경상도의 풍토적 환경이 수천 년 동안 경상도의 음악 문화로 발전한 것이라고 한다.

중국 당()나라 재상 두우(杜佑)가 지은 통전(通典)의 변한조(弁韓條)에는 변한과 진한에서는 사당에서 제자를 지낸다라고 해서, 고대 삼한(三韓) 중 경상도 땅에 존재했던 변한과 진한에서는 제신(祭神)하며 노래와 춤을 추는 의례가 있어, 오늘날 경상도 동해안과 남해안의 별신굿, 경상도 농악에 그 문화가 전승된다.

신라 시대에는 현악기인 가야금, 거문고, 향비파와 관악기인 대금, 중금, 소금 등 삼현삼죽(三絃三竹)이 완성되어 관현 반주의 가무(歌舞) 활동으로 확장되었으며, 비범한 노래가 포함된 향가가 등장해 한민족 노래의 발전을 가져왔다. 고려 시대에는 경상도 출신의 명기명창들이 기록을 전해, 가창력 있는 경상도 출신의 음악가들을 찾아볼 수 있다.

불교음악인 범패(梵唄)는 신라의 불교 도입과 함께 이루어졌고, 진감선사(眞鑑禪師)가 당나라에 다녀와서 경상남도 하동의 쌍계사(雙磎寺)에서 범패를 가르쳐 신라 범패를 중흥시켰는데, 이것이 경상도의 범패로 토착화된 팔공산제(八公山制)’ 범패이다.

판소리와 산조는 이른바 시나위권이라 해서 경상도 서남부, 충청도 서부, 전라도에서 전승되던 것이었으나, 이것이 조선 후기에 경상도 전역으로 확산되고, 일제강점기에는 경상도 출신의 많은 명인명창이 배출되어 판소리, 산조, 음악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특히 가야금병창은 경북 칠곡군 가산면 출신인 박귀희(朴貴姬, 1921~1993) 명인에 의해 계승되었는데, 그는 11(1931)에 대구의 달성권번에서 박지홍(朴枝洪, 1889~1961)에게 단가 소상팔경만고강산을 배웠고, 14세에 이화중선(李花中仙, 1899~1943)이 이끄는 대동가극단에 입단하면서 박지홍, 장판개(張判盖, 1885~1937)에게 소리를 익혀, 이후 국악계의 수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전국적으로 퍼져 나간, 경상도의 노래자랑

이보형은 경상도 음악은 웅장하고 강직하며 발랄하다. 그것은 농악과 무악의 꿋꿋한 꽹과리 가락이며, 다른 고장보다 징과 북을 많이 쓰는 편성에서 볼 수 있다. 영제시조가 꿋꿋하다든가, 판소리 동제(東制)가 웅장하다든가 하는 것은 모두 같은 맥락에서 풀이된다라고 했다. 경상도 노래는 길고 느리게 부르면 애달픈 듯하지만, 빠르게 부르면 경쾌하다. 이 감성은 아마도 <밀양아리랑>을 연상해 보면 좋겠다.

경상도의 노래 중에는 전국으로 확산되어 경상도 노래인지 논란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노래를 꼽자면 <밀양아리랑>이다. <밀양아리랑>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한 조선의용대의 군가(軍歌)로 사용되기도 했고, 1930년대 음반 산업이 본격화된 시기에는 권번 출신의 기생부터, 대중 가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가수들에 의해 음반으로 취입되었고 유행했다.

<밀양아리랑>은 경상도를 대표하는 아리랑류의 노래로 그 음악적 특징은 메나리토리로 설명할 수 있으며, 일제강점기 독립군가에서 광복군가로, 한국전쟁 당시에는 중공군 군가로, 동시에 작곡가 김희조를 통해 군악대 행진곡인 <밀양아리랑 행진곡>으로 재탄생하는 한민족의 근대 역사와 그 맥락을 같이해 온 전력이 있다.

또한 <쾌지나칭칭나네>는 조선 시대 이래로 유래한다고 보는데, 유행가로 알고 있는 사람도 더러 있다. 아마도 경상도 노래 <쾌지나칭칭나네>1958년 제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현 한국민속예술제)에 경상북도 대표로 참가해 개인상을 받으며, 폭넓게 알려진 것이 아닌가 한다. 경상도 민간 음악 현장에 가면 칭칭이조라고 해서 <쾌지나칭칭나네>의 가락에 수많은 노랫말이 전하며, 노래 곡목도 <쾌지나칭칭>, <칭칭이>, <칭칭이소리>, <치기나칭칭나네>, <캥마쿵쿵노세> 등등 다양하다. 칭칭이소리는 경상도 무가에도 있고, 경상도 무형유산 중 농요인 자인계정들소리, 문경 모전들소리, 구미발갱이들소리, 예천공처농요 등등 주로 들에 나가 일하며 부르는 노동요인 들소리에 포함되어 전승되고 있다.

끝으로 경상도 농요를 해외까지 널리 알린 토리스의 이야기를 전한다. ‘토리스는 대구 출신의 국악인과 동인들이 구성한 국악아카펠라그룹으로 국가무형유산인 예천통명농요 중 모심기 소리인 <아부레이수나>를 재해석해, 2009년에 국악방송이 주최한 ‘21세기 한국음악 프로젝트에 출전해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다. 이를 계기로 국악아카펠라그룹 토리스<아부레이수나>를 통해 미국 뉴욕까지 경상도 농요의 매력을 전파했다.

 



국가무형유산(1985년 지정) 예천통명농요. 1998년 기록화 사업 이미지

출처: 국가유산청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예천통명농요. 2018년 국립무형유산원 토요상설공연 중

출처: 국가유산청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QR코드 및 링크

풍장소리 중 <칭칭이소리>

국립국악원 국악사전 [링크]

아리랑 특집공연 기록영상 예천통명농요, 6-<밀양아리랑>

국가유산진흥원 국가유산채널 [링크]

경북 예천군 통명마을에서 전승되어 온 전통농요 기록 영상(1985년 제작)

국가유산청 유튜브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