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2024 봄, 여름호-옛날 옛적에]현대 문화 콘텐츠 상상력의 보고( 寶庫), 옛이야기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4-10-02 조회수 : 1087


현대 문화 콘텐츠

상상력의 보고( 寶庫), 옛이야기


글. 박현숙(춘천교육대학교 아동문학교육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옛이야기는 오랜 세월 사람들의 입에서 입을 통해 구전되어 왔다. 음성언어로 전승되어 온 옛이야기는 문명이 발달하면서 표현 수단과 향유 방식이 문자언어, 영상언어로 다양화되었다. 옛이야기는 다양한 현대 문화 콘텐츠의 원천 서사로서 그 위상을 발휘하고 있다. 특정 설화를 개작한 전래동화 영상물부터 웹툰, 게임, 드라마,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의 생활상과 상상력을 담아 오늘날에도 꾸준히 전승되고 있다.



영화 <신과함께-인과 연< 포스터, 2018년 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신과함께-인과 연> 포스터, 2018년
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초창기 옛이야기 기반의 콘텐츠


초창기 옛이야기 기반의 콘텐츠는 특정 설화를 개작하는 방식으로 전래동화 영상물을 제작했다. 1990년대 대표적인 전래동화 방송 프로그램은 KBS2에서 방영한 <배추도사 무도사의 옛날옛적에>(1989~1990)1다. 우렁이 색시’, ‘토끼의 명재판’, ‘도깨비방망이’, ‘천년여우’, ‘연이낭자와 버들도령’, 요술 부채와 소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등 개별 설화를 하나의 에피소드로 각색해 방영했고, 현 40대는 어린 시절에 방영된 이 방송을 통해 다양한 한국의 옛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시청자에게 큰 호응을 얻은 <배추도사 무도사의 옛날옛적에>가 종영된 이후에는 <은비까비의 옛날옛적에>(1991~1992)2 가 후속작으로 방영되었다. 이 시리즈를 통해서는 ‘나무꾼과 선녀’, ‘푸른 구슬’, ‘견우직녀’, ‘이상한 돌절구’, ‘곶감과 호랑이’, ‘울산바위’, ‘파란 부채 하얀 부채’, ‘원님과 항아리’, 은혜 갚은 까치’ 등의 옛이야기를 각색한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어 시청자에게 인기를 끌었다.



1) KBS2에서 1989. 10. 6.~12. 29., 1990. 1. 5.~3. 30., 1990. 4. 6.~6. 29. 동안 방영되었다.

2) <배추도사 무도사의 옛날옛적에> 후속작으로 KBS2에서 1991. 4. 12.~1991. 6. 21., 1992. 4. 17.~1992. 7. 10. 동안 방영되었다.



초창기 옛이야기 콘텐츠는 각색 위주로 제작되었지만 점차 옛이야기 속 캐릭터, 화소, 주제 등 다각적인 요소를 차용해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한 창작물부터 옛이야기 개별 작품 서사의 심층적 분석과 재해석을 통한 기발하고 참신한 창작물에 이르기까지 창작 방식과 분야가 다양화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K-문화 콘텐츠 속에는 한국의 정신과 문화적 상징이 응축된 K-STORY의 원천, 옛이야기가 다양하게 녹아 있다. 옛이야기 기반의 현대 콘텐츠물을 분야별로 살펴보자.



배추도사 무도사의 옛날옛적에, 1989~1990년 출처: KBS 1990년대의 대표적인 전래동화 방송 프로그램이다.


애니메이션 <배추도사 무도사의 옛날옛적에>, 1989~1990년
출처: KBS
1990년대의 대표적인 전래동화 방송 프로그램이다.



옛이야기와 웹툰의 만남


한국의 웹툰 산업은 웹소설 → 웹툰 → 영상화 → 관련 상품 판매로 이어지는 가치 사슬을 갖춰 나가며3 K-문화 콘텐츠를 주도해 가고 있다. 2022년에는 웹툰 플랫폼의 글로벌 진출뿐 아니라, 해외로 진출하는 ‘글로벌 웹툰 제작사’, 해외에서 웹툰 제작을 공식화하는 ‘웹툰 전문 제작사’가 등장했다.4 웹툰 분야에서 옛이야기를 창작의 원천 서사로 차용한 사례를 살펴보자.



3)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만화산업백서』,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51쪽.

4)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만화산업백서』,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23쪽.



한국 신화를 원천 서사로 삼아서 대성공을 이룬 대표적인 작품은 주호민의 웹툰 <신과함께> (2010~2012)5다. 주호민은 한국에서 그리스·로마 신화의 열풍이 불던 시기에 한국 신화 기반의 웹툰을 전면에 내세웠다. ‘저승편’, ‘이승편’, 신화편’ 총 3부로 구성된 <신과함께>는 대중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저승편’은 39세에 세상을 떠난 망자 김자홍이 저승에서 생전의 삶을 심판받는 여정을 그렸다. ‘이승편’은 어린 동현의 유일한 보호자인 할아버지(김천규)의 수명이 다 되자 할아버지를 저승으로 데려가려는 저승차사와 세상에 혼자 남겨질 동현을 위해서 할아버지를 지키려는 가택신(家宅神)의 대결 속에서 철거민 문제를 다뤘다. 신화편’은 각 인물이 신으로 좌정하는 내력을 담은 서사무가에 작가적 상상을 가미해 ‘대별소별전’, ‘차사전’, ‘할락궁이전’, 성주전’, ‘녹두생이전’, ‘강림전’으로 재구성했다.


5) 네이버웹툰에서 2010년 1월 8일부터 2012년 8월 29일까지 매주 월·금 연재해 총 212화로 완결되었다.


총 3부로 구성된 <신과함께> 창작에 근간이 된 원천 서사는 다음 표와 같다. 


<신과함께> 창작에 근간이 된 원천 서사

신과함께 창작에 근간이 된 원천 서사
원천 서사 내용 신과함께
차사본풀이 강림이 김치 원님의 명을 받아 저승에서 염라왕을 데려와서 과양생 부부가 버물왕 삼 형제를 살해한 죄상을 밝히고, 염라왕에게 재주를 인정받아 저승차사가 된 이야기 저승편, 이승편, <강림전<(신화편)
문전본풀이 일곱 형제의 막내인 녹두생이가 어머니 행세를 한 노일제대귀일 딸의 악행을 밝혀 문전신이 되고, 녹두생이가 목숨을 되살린 어머니 여산부인은 조왕신, 아버지 남 선비는 정낭신, 노일제대귀일 딸은 측간신으로 좌정한 이야기 이승편, <녹두생이전<(신화편)
성주풀이 (성주본가) 황우양 씨가 천하궁 재건을 위해 집을 비운 틈에 아내에게 위기가 닥쳤으나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해 가정을 지켜 낸 부부가 가택신으로 좌정한 이야기 이승편, <성주전<(신화편)
천지왕본풀이 대별왕과 소별왕 형제가 인간 세상을 다스리기 위한 대결에서 대별왕이 모두 승리했으나 소별왕이 마지막 ‘꽃피우기’ 대결에서 꽃을 잘 피운 형의 꽃을 바꿔치기하는 속임수로 이승을 차지하고, 대별왕은 저승을 차지하게 된 내력의 이야기 <대별소별전<(신화편)
이공본풀이 유복자로 태어난 할락궁이가 갖은 고난 속에서 아버지를 찾아가 상봉한 뒤 악행을 저지른 장자를 징치하고 죽은 어머니를 살려 서천꽃밭을 지키는 꽃감관이 된 이야기 <할락궁이전<(신화편)



<신과함께>의 원천 서사는 제주도 큰굿에서 연행되는 본풀이와 경기 남부 지역에서 연행된 <성주풀이>에 기원을 두었다. 본풀이는 신의 근본을 푼다’는 의미다. 작가는 죽음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공포를 유쾌하게 풀어내면서 한국 신화의 원형을 잘 살려 냈다. 또한, 유쾌함 속에서도 인간의 죽음과 저승 공간을 통해 현실 세계의 부조리를 풍자하는 진지함도 놓치지 않았다. 


<신과함께> ‘저승편’, ‘이승편’, 신화편’의 중심에는 ‘저승차사’가 있다. ‘저승차사’는 한국인의 저승관을 드러내는 대표 인물이자, 현대 문화 콘텐츠에서 가장 활발하게 재창조되는 캐릭터다. <신과함께>에서는 저승차사의 외모가 획기적으로 변모했다. <전설의 고향>을 비롯한 다수의 방송 매체에서 정형화된 검정 갓, 검정 도포, 하얗고 창백한 얼굴, 새빨간 입술의 무시무시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말끔한 외모에 검정 정장 차림으로 변모한 것이다. 저승차사 ‘강림’은 ‘차사본풀이’에서 아내와 첩을 열여덟이나 둔 신상을 증명이라도 하듯 짙은 눈썹에 연예인 뺨치는 꽃미남으로 형상화되었다. <신과함께>에서의 변화된 저승차사의 이미지는 이후 다양한 콘텐츠 속 저승차사 형상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현대 콘텐츠 속 저승차사 형상 변화

현대 콘텐츠 속 저승차사 형상 변화
<아들과 딸> 1992~1993년 <신과함께> 2010~2012년 <서북의 저승사자> 2015~2018년 <도깨비> 2016~2017년 <내일> 2017년~


양세준의 웹툰 <서북의 저승사자>, 라마의 웹툰 <내일>, 드라마 <도깨비>·<블랙>·<내일>에 등장하는 저승차사의 이미지는 모두 <신과함께>에서 창조한 꽃미남 저승차사 이미지로 형상화되었다. CJ ENM에서 제작한 ‘호러 애니메이션’ <신비아파트>의 귀신을 잡는 퇴마사 ‘최강림’ 역시 꽃도령 오빠라는 별명을 가진 미소년 이미지의 형상이다.


웹툰 <신과함께>의 인기몰이는 ‘저승편’과 ‘이승편’ 원작의 영화, 뮤지컬 그리고 수집형 RPG 게임 <신세계: 저승 차사전>(2019) 등 2차적 저작물 제작으로 이어졌고, 영화 <신과함께-죄와 벌>(2017, 1,441만 명)·<신과함께-인과 연>(2018, 1,227만 명) 모두 관객 ‘천만 영화’로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 <신비아파트> 역시 TVA(Television Animation)는 시즌6(2024)까지 제작되었고, 웹드라마 <기억, 하리>(2018)·<기억, 하리2>(2019)·<연애공식 구하리>(2020)나 증강현실(AR)을 활용한 모바일 게임 <신비아파트: 고스트 헌터>(2018)·<궁수 강림: 6개의 예언>(2020) 등 게임이 연속적으로 출시되었으며 뮤지컬도 시즌1 <인형뽑기 기계의 비밀>(2017)을 시작으로 시즌6 <붉은 눈의 저주>(2023)까지 제작되었다. 옛이야기를 원천 서사로 삼은 웹툰 <신과함께>와 <신비아파트>는 원소스멀티유즈(OSMU, One Source Multi Use)의 대표적 성공 사례라 할 수 있다.



(좌) 영화 <신과함께-죄와 벌>, 2017년 (우) 뮤지컬 <신과 함께>, 2019년


(좌) 영화 <신과함께-죄와 벌>, 2017년
(우) 뮤지컬 <신과 함께>, 2019년



한국 민담 중 한국인 대다수가 알고 있는 옛이야기 <선녀와 나무꾼>을 원천 서사로 삼아 창작한 웹툰은 아몬의 <망월선녀설화>, 돌배의 <계룡선녀전>(2017~2018)6, 효빈의 <선녀외전>(2022~) 등이 있다. <망월선녀설화>와 <계룡선녀전>은 옛이야기 <선녀와 나무꾼> 기본 서사에 천상과 지상, 전생과 현생의 윤회를 거듭하는 시공간의 변화를 주었고, 선녀와 나무꾼 두 주인공이 이들의 사랑과 인연을 방해하는 적대자와 갈등하는 내용 변주를 통해 이들 사랑의 당위성을 강화했다. 또 옛이야기에서 단순 조력자에 불과했던 사슴을 자신의 욕망으로 선녀의 날개옷을 훔치는 비중 있는 인물로 변모시켰다. 작가는 창작 과정에서 옛이야기 속 나무꾼의 약탈혼과 금기 위반 화소를 제거하는 등 설화의 원형적 상상에 현대적 상상을 가미해 색다른 <선녀와 나무꾼> 서사로 재창조했다. 웹툰 <계룡 선녀전>은 tvN 16부작 드라마(2018)로 제작 방영되기도 했다. 여러 옛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한 웹툰, 김나임의 <바리공주> 56화~60화, 무적핑크의 <실질객관동화> 45화 그리고 호랑의 <천년동화> 시리즈 1권에서도 옛이야기 <선녀와 나무꾼>을 원천 서사로 삼았고, 원서사를 뒤틀어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를 풍자했다. 


6) 네이버웹툰에서 2017년 3월 1일부터 2018년 3월 14일까지 연재되었다.


강풀의 초능력 액션 히어로 웹툰 <무빙>(2015)과 이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웹드라마(2023)에서도 한국 민담의 흔적이 발견된다. 한국판 히어로물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특재팔형제>의 ‘진둥만둥’, ‘먼말듣기’, ‘천리보기만리보기’, ‘여니딸깍’, ‘자른둥만둥’, ‘올리치기내리치기’, ‘더우니차니’, ‘기프니야트니’나 <재주 많은 의형제>의 ‘노랑두대구’, ‘코샘생이’, 오줌손이’, ‘배손이’ 등 각기 다른 특별한 재주를 지닌 인물과 특재 인물들이 연합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서사는 웹툰·웹드라마 <무빙>의 초능력 캐릭터와 히어로 서사에 그 원형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특히 <무빙>의 초능력자 중 비행 능력을 지닌 봉석과 아들의 능력을 강제로 숨기려는 부모의 서사는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난 비범성으로 인해 비극적 죽임을 당한 <아기장수 우투리> 전설의 서사와 맞닿아 있다. 다만, <아기장수 우투리> 전설 속 아기장수는 비범한 능력이 부모와 국가에 의해 꺾여 좌절되지만 현대 콘텐츠 <무빙> 속 봉석은 좌절을 극복하고 특별한 비행 능력으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진정한 영웅으로 성장한다. 



옛이야기와 드라마, 영화의 만남


한국의 드라마, 영화 등 흥행에 성공한 다수의 영상 콘텐츠는 옛이야기를 원천 서사로 창작된 사례가 많다. 옛이야기 <바보온달과 평강공주>는 이규웅 감독의 영화 <바보온달과 평강공주>(1961)를 비롯해 돌콩의 웹툰 <나에게 온 달>(2014~2016)과 <온달 왕자들>(MBC, 2000)·<천하무적 이평강>(KBS, 2009)·<마이 온리 러브송>(넷플릭스, 2017)·<달이 뜨는 강>(KBS, 2021) 등 수많은 드라마에 차용되었다. 또한, ‘온달’과 ‘평강공주’는 서울특별시 광진구와 충청북도 단양군의 마스코트로도 활용되고 있다. 


영화 <과속스캔들>(2008)과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KBS2, 2019)에서는 한국의 대표 삼신 <당금애기> 신화에서 미혼모의 고난과 극복의 서사 전통을 이었으며, 16부작 드라마 <도깨비>(tvN, 2016~2017)에서는 인간 잉태와 출산, 운명을 관장하는 삼신’의 신직에 초점을 맞추어 캐릭터의 전통을 이었다. <도깨비>에 등장하는 ‘삼신’은 전국적으로 전승된 ‘제석본풀이(당금애기)’와 제주도에서 전승된 ‘삼승할망본풀이’의 ‘삼신’ 서사를 두루 조합해 매력적인 캐릭터로 재창조되었다. 두 삼신 신화에서 ‘당금애기’는 처녀의 몸으로 홀로 출산과 양육을 경험한 뒤 삼신으로 좌정하며, ‘삼승할망본풀이’의 멩진국따님애기는 동해용왕따님애기와 이승의 삼신 차지 경쟁 ‘꽃피우기 내기’에서 승리하고 이승의 삼신으로 좌정한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창조한 ‘삼신’ 캐릭터는 인자하고 자상한 이미지의 ‘당금애기’ 삼신과 이성적이고 지혜로우며 세련된 이미지의 ‘멩진국따님애기’ 삼신의 성격, 특성을 두루 아우르고 있다. 



드라마 <도깨비>, 2016 2017년 | tvN


드라마 <도깨비>, 2016 2017년 | tvN



<쥐 둔갑 설화>는 진짜 주인과 쥐가 둔갑한 가짜 주인의 대결인 ‘진가쟁주(眞假爭主)’ 설화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는 <쥐 둔갑 설화>의 진짜와 가짜가 뒤바뀐 상황, 가짜에게 투영된 각 인물들의 원형적 욕망을 잘 형상화했다. 

인간의 공포를 자극하는 ‘원귀’ 화소는 지속적인 대중의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원귀’는 시대와 장르를 뛰어넘는 창작 요인이자 <신과함께>·<신비아파트> 스토리텔링의 성공 요인이기도 하다. ‘원혼 설화’를 원천 서사로 삼은 창작 콘텐츠 사례는 영화 <월하의 공동묘지>(1967, 권철휘 감독), 영화 <장화, 홍련>(2003, 김지운 감독), MBC 드라마 <아랑 사또전>(2012), 웹툰 <싸우자귀신아>(2007~2010, 임인스) 원작의 tvN 드라마 <싸우자 귀신아>(2016)·<호텔 델루나>(2019), SBS 드라마 <주군의 태양>(2013)·<악귀>(2023), 모바일 어드벤처 게임 <장화홍련: 기억의 조각>(2023) 등이 있다. 특히 홍정은·홍미란 작가가 쓴 드라마 <호텔 델루나>(2019)에는 다수의 옛이야기가 여러 형태로 차용되어 있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원혼 설화의 대표작은 <아랑전설>이다. 밀양부사의 딸 아랑 낭자가 억울한 죽임을 당한 뒤 원귀가 되어 신임 부사를 통해 범인을 잡아 원한을 풀었다는 내용으로 원한-해원의 구조를 지닌다. <호텔 델루나>의 전체 서사는 <아랑전설>의 원한-해원의 서사 구조를 따른다. 이 구조는 <신비아파트> 주인공 도깨비 신비, 하리·두리 남매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귀신들 사연을 듣고 억울함을 풀어 주는 구조와도 동일하다. <호텔 델루나>에서 원귀의 사연을 들어 주고 원한을 풀어 주는 신임 부사의 역할은 귀신이 묵어가는 호텔의 인간 지배인 구찬성과 호텔 사장 장만월이 수행한다. 그리고 각 화마다 등장하는 원귀의 사연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며, 각 에피소드 곳곳에 옛이야기가 삽입된다.



(좌) 드라마 <주군의 태양>, 2013년 | SBS (우) 드라마 <호텔 델루나>, 2019년 | tvN


(좌) 드라마 <주군의 태양>, 2013년 | SBS
(우) 드라마 <호텔 델루나>, 2019년 | tvN



불의의 사고로 죽은 처녀 귀신 에피소드에는 <재가 된 신부> 설화, 부모의 수명으로 불치병 아들의 수명을 연장한 에피소드에는 <친구에게 수명을 나눠 준 정북창> 설화가 핵심 서사로 삽입되었고, 과거 구찬성의 부친 구현모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20년 후에 아들을 장만월에게 주겠다는 거래로 생명을 연장한 장면에는 <연명설화>가 삽입된다. 호랑이 손님 에피소드에서는 장만월과 구찬성의 대화 장면에 <해와 달이 된 오누이>, <팥죽할멈과 호랑이>, <차복설화>의 일부 장면이 삽입된다. <호텔 델루나>는 이전의 콘텐츠에서 크게 관심받지 못했던 캐릭터, ‘마고신’의 원형을 잘 살려 창조했다. 신화 속에서 세상의 지형지물을 창조한 거인창조여신이자 자연 그 자체로서의 대모신은 <호텔 델루나>에서 인간의 탄생과 죽음·치유·운명 징벌 재물·빈곤을 각각 담당하는 6자매로 분화된 마고로 형상화된다.


옛이야기는 전승 과정에서 당대의 이념과 가치관을 반영한다. <오누이 힘내기> 설화는 힘이 장사인 오누이가 목숨을 걸고 힘내기를 하는 이야기로, 누이가 이기려는 찰나에 어머니의 방해로 남동생(오빠)이 승리하고 누이는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다. 여성 영웅인 누이의 패배는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권력이 이동했던 역사와 남아선호사상7을 반영하고 있다.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MBC 64부작 드라마 <아들과 딸>(1992~1993)은 이란성 쌍둥이 아들 귀남과 딸 후 남을 통해 당대의 남아선호사상을 깊이 반영함으로써 <오누이 힘내기>의 설화적 의미를 내포한 현실 세계의 리얼리티를 보여 준다. 그렇다면, 양성평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사 회에서는 남아 선호, 남녀 차별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오누이 힘내기>설화의 서사적 의미와 전승력이 상실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최근 많은 콘텐츠에서 여성 영웅 서사가 강세를 띠는 현상처럼 시대적 인식의 변화는 현대 콘텐츠 안에서 가부장제에 희생당하고 패배한 누이의 반격 서사를 모색하며 오히려 옛이야기 서사의 원형적 힘을 보여 주고 있다. 기존의 콘텐츠에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힘’은 <오누이 힘내기>에서 아들의 승리가 공식인 것처럼 남성 영웅의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개인 혹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가 다름 아닌 우먼 파워를 보여 주는 여성 영웅이다.



7) 남아선호사상(男兒選好思想): 부계 혈통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여자 아이보다 남자 아이를 선호하는 관념을 가리키는 사회 용어.(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영화 <낙원의 밤>과 <마이 네임>에서 여주인공은 가족을 해친 조폭과의 육체적 힘겨루기에서 승리하고 복수를 완성한다. JTBC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에서 모계 혈통으로 유전되는 강한 힘의 소유자 3대 모녀는 병약한 남성 가족과 힘의 대비를 보여 주면서 신종 마약 범죄 집단을 강력한 육체의 힘으로 제압하고 혼탁한 세상을 구한다. 또, 영화 <정이>에서는 디스토피아에서 수많은 작전을 승리로 이끄는 용병이 여전사이며, OTT드라마 <지옥>에서는 신의 심판 ‘지옥행’으로 대혼란에 빠진 세계의 진실을 파헤치는 주도적 인물이 여성 변호사다. 이처럼 현대 콘텐츠에서 여성 영웅 서사의 부상은 <오누이 힘내기>에서 사회적 실패를 강요당한 여성 영웅, 누이의 서사가 현대인의 사회 인식 변화에 따라 재의미화되는 서사의 변주 과정, 즉 설화의 가변적이고 개방적인 특성을 잘 보여 주는 사례이다.


남성 영웅(남성 파워)→여성 영웅(여성 파워) 서사로의 변화


남성 영웅(남성 파워)→여성 영웅(여성 파워) 서사로의 변화
아들과딸<아들과 딸> 1992~1993년 낙원의밤<낙원의 밤> 2021년 마이네임<마이 네임> 2021년 정이<정이> 2023년 힘쎈여자강남순<힘쎈여자 강남순> 2023년



옛이야기와 대중가요의 만남 


<서동 설화>에서 서동은 마를 캐서 파는 마퉁이(맛동이, 薯童)다.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서동요>를 지어 아이들에게 마를 나눠 주며 노래를 부르게 한다. 진평왕이 그 노랫말을 듣고 선화공주를 내쫓자 서동은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고 훗날 백제 무왕이 된다. 향가 <서동요>와 그 배경 설화를 보면 노래의 전파력과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의 설화 기반 창작곡은 다양한 형태로 노랫말 창작이 이루어진다. 설화 내용을 그대로 노랫말에 담고 개성적인 곡을 입혀 대중성을 확보한 노래로는 홍수철의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장사익의 <꽃구경> 등이 있다. 홍수철은 ‘온달 설화’, 장사익은 ‘고려장 설화’ 내용을 창작곡에 고스란히 담아 한 편의 설화를 노래로 들려주었다. 

대중가요에서 가장 많은 창작의 원천이 된 설화는 단연 <견우직녀>이다. <견우직녀>의 설화 모티브로 창작을 이룬 대중가요는 1940년대 백난아의 <직녀성>(박영호 작사, 김교성 작곡, 1941), 1950년대 김정애의 <견우성과 직녀성>(강사랑 작사, 김교성 작곡, 1957), 1960년대에 나현옥의 <견우와 직녀의 사랑>(이인선 작사, 신일동 작곡, 1969), 1970년대에 심수봉의 자작곡 <견우직녀>(1979), 1980년대에 김원중의 <직녀에게>(문병란 작사, 박문옥 작곡, 1985)·나미의 <직녀성>(김순곤 작사, 이호준 작·편곡, 1989) 등이 있다.


억만 겹 세월 속에 마음이 서러워 

은하수 뿌린 눈물 얼마나 될꼬 

까치야 내일일랑 부디 오려마 

칠월칠석 먹구름에 내 님 모습 흐려도 

삼천리 비단길을 밝혀 주련가


- 심수봉, <견우직녀> 


인용된 노랫말처럼 <견우직녀> 설화의 이별과 기다림이라는 주제는 시대를 뛰어넘어 대중과 소통하면서 광복 이전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막론하고 대중가요 창작에 필요한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 왔다.

<선녀와 나무꾼> 설화를 모티브로 창작된 대표곡은 ‘도시아이들’의 <선녀와 나무꾼>이다. 이 곡은 1989년 도시아이들이 3집 앨범 《CITY DANCE》에 최초 수록되었다가 도시아이들 해체 후 김창남이 1992년에 낸 솔로 앨범에 재수록되면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 이승환은 나무꾼의 시선에서 <선녀와 나무꾼> 설화를 재해석한 자작곡 <나무꾼의 노래>(2004)를 정규 앨범 8집에 수록했는데, 노랫말에 선녀를 향한 나무꾼의 애틋함을 담아냈다.


너무나 갖고 싶어서 그대를 속여야만 했었던 

나를 용서해 달라는 말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두 손에 불타 버린 그대 하얀 날개옷 

미안하고 미안하고 (항상)


- 이승환, <나무꾼의 노래> 


<선녀와 나무꾼> 설화는 최근 새로운 형태로 대중가요와 만나고 있다. <선녀와 나무꾼> 서사를 현대적으로 비틀어서 인기몰이 중인 효빈의 웹툰 <선녀외전>(2022~현재)과의 OST 컬래버레이션 음원 창작이 그것이다. 최근까지 장혜진의 <가슴 아파도>, 먼데이키즈의 <너를 너를 너를>, 한동근의 <언젠가는 다시 만난다>, 이창섭의 <천상연>, 신예영의 <매일 난 헤어진 다음날>, 심규선(Lucia)의 <고맙습니다>, 원필(DAY6)의 <시간의 잔상>, 연변대학최씨의 <바람이 불지 않은 것처럼> 등 음원이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젊은 싱어송라이터의 옛이야기를 품은 창작곡도 주목할 만하다. ‘호러송(horror song)’ 창시자라 불리는 안예은은 인간의 ‘공포’를 자극하는 여러 한국 설화를 원천으로 다양한 곡을 창작하고 있다.


<신과함께> 창작에 근간이 된 원천 서사

신과함께 창작에 근간이 된 원천 서사
곡명 곡 설명8 원천 서사
<능소화>(2020) 임금의 성은을 입은 궁녀가 임금을 기다리다가 죽어 독성을 가진 꽃이 되었다는 유래에서 착안한 곡. <전설의 고향>을 귀로 듣는 느낌을 낸 납량특집 콘셉트의 노래 <능소화 전설<, <사그라진 신부<
<창귀>(2021) 호랑이에게 해를 입어 죽은 귀신의 서사로 사람을 홀리는 듯한 멜로디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사가 특징. ‘귀로 듣는 납량특집’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곡. <창귀<
<쥐(RATvolution)>(2022) 사람의 손톱을 먹고 손톱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러 몰려가는 쥐 떼를 상상하면서 만든 곡 <쥐 둔갑 설화<
<홍련(紅蓮)<(2023) 장화와 홍련을 포함해 밑바닥에서 원과 한을 키워 왔을 모든 물귀신의 통쾌한 복수극을 다룬 곡 <아랑 전설<, <장화홍련<
<도깨비>(2020) 한밤중에 어두운 숲속에서 불을 밝히고 인간계까지 내려와 시끄럽게 잔치를 벌이는 도깨비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만든 곡 <도깨비> 설화


8) 곡 설명은 앨범에 소개된 내용을 옮긴 것이다.


싱어송라이터 쓰다(Xeuda)는 제주도 신화를 원천으로 창작한 곡을 싱글앨범 《꿈, 칼, 숨》(2022)9에 수록했다. <꿈>은 ‘삼공본풀이(가믄장아기)’, <칼>은 ‘세경본풀이(자청비)’, <숨>은 ‘삼승할망본풀이(동해용왕따님애기)’를 읽고 자기 서사를 신화에 녹여 낸 노랫말을 완성했다.


9) 이 앨범은 2021 아르코청년예술가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