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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연이낭자와 버들도령
글. 이소윤(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민속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버들도령, 버들도령, 연이낭자 왔다, 문 열어라.”
설화 각편에 따라 버들도령의 이름은 정도령, 양산복, 김해 김도령, 남해 남도령 등으로, 연이낭자의 이름은 월례, 팥조시, 돌순 등으로 불린다. 그러나 동굴 속 소년의 이름을 두 번 부르고 소녀가 왔음을 밝힌 뒤 문을 열라는 기본적인 주문의 형식은 바뀌지 않는다. 계모의 학대를 받는 소녀는 바로 이 주문을 통해 한겨울 산속을 그토록 찾아 헤매도 보이지 않던 산나물이 잔뜩 돋아 있고 따스한 소년이 얼어붙은 소녀를 가엾게 맞아 주는 이계(異界)로 들어갈 수 있다. 소녀를 도와주는 소년을 죽이는, 한국 계모 설화에서 흔치 않은 이 이야기 속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일러스트: 심은경
소녀를 도와주는 소년과 금단의 공간인 이계
소년이 존재하는 이계는 대개 동굴 속 공간으로 나타나지만 때로는 대문이 있는 기와집이나 별당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도 밖에서는 구할 수 없는 산나물을 구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 서 소녀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와 다른 세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더욱이 이 이계는 주문을 외워야 들어갈 수 있기에 그 자체로 금단의 공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떤 각편에서 소년은 소녀에게 다시는 이 공간을 찾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다.
처음 소녀가 이계로 들어가게 된 것은 우연한 발견인 경우도 있지만 흰 강아지가 안내해 주거나 꿈속에서 친모가 언질을 해 주기 때문이다. 계모가 명한 산나물을 구하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소녀를 안타까이 여긴 것이다. 소녀가 힘겹게 돌문을 열었다는 사실을 안 버들도령이 동굴로 들어올 수 있는 주문을 알려 주는 것도 앞으로 계속될 소녀의 고행을 돕기 위한 것이다. 이후에도 몇 차례 소녀는 계모가 가져오라고 명한, 보통 한겨울에는 나지 않는 것들을 얻기 위해 동굴 앞에서 주문을 외친다. 문제는 이계가 금단의 영역이기에 해당 주문은 반드시 소년과, 소년이 그 주문을 공유해 준 유일한 사람, 곧 소녀만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소녀가 주문을 외울 때 누군가 그것을 엿보고 있다는 사실은 이야기에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소녀가 주문을 외우자 동굴 앞 돌문이 열리고 계모는 그동안 소녀가 동굴 속 소년을 만나 산나물을 구해 왔음을 알게 된다.
계모가 소녀에게 심부름을 시키지 않은 어느 날, 계모는 혼자 조용히 집을 나선다. 어쩌면 그날은 소녀에게 한겨울 집을 나서지 않아도 되어서 기쁜 날이었을 수도 혹은 동굴 속 소년의 얼굴을 보지 못해 아쉬운 날이었을 수도 있다. 계모는 동굴 앞으로 가 소녀인 것처럼 주문을 외운다. 어김없이 돌문은 열리고야 만다. 주문은 그런 것이니까. 누가 외우더라도 주문이 외워지면 돌문은 열려야만 한다. 돌문이 열리자 계모는 소년의 목을 칼로 쳐 죽인다. 계모는 왜 소년을 죽일까? 계모가 여주인공이 만나는 남자를 죽이는 것은 한국 계모 설화에서 흔치 않은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박연숙(2010)은 계모의 소년 살해가 환생꽃 이야기로 나아가기 위한 장치라고 논의한 바 있다.
구원의 도구 ‘환생꽃’
설화는 아무도 모르게 소녀를 죽음으로 내몰고 싶었던 계모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녀가 처음 산나물을 구해 온 날 계모는 ‘동지섣달에 저 년 어떻게든 죽으라고 시킨 일인데, 어디 가서 이리 해 왔지?’라며 속으로 반문한다. 설동에 산나물을 찾아오라 했던 것은 소녀를 아무도 없는 설산에서 꽁꽁 얼려 죽이려 했던 계모의 큰 그림이다. 계모는 이웃에게 혹은 남편에게 소녀는 눈 내리는 겨울날 집 밖을 나섰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함으로써 소녀의 죽음에 덧씌워질 자신의 혐의를 지우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계모가 소녀의 뒤를 몰래 밟은 것은 실패했어야 하는 소녀의 심부름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소녀는 산나물을 찾아 돌아와서는 안 되었다. 애초에 산나물 구해 오기가 성공하는 일은 계모의 시나리오에 없던 것이니까. 소녀에게 산나물을 들려 보낸 소년은 시나리오를 꼬이게 만들었으므로 계모에 의해 잔인한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 계모는 소년을 죽인 뒤 다시 소녀에게 산나물을 가져오라고 시킨다. 소년의 죽음에 이어 이번에야말로 소녀를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소년이 죽었으니 동굴 문은 열리지 않는다. 소녀는 동굴에서 산나물을 구해 올 수 없다. 결국 소녀는 산속을 헤매다 얼어 죽을 것이다. 이것이 계모의 새로운 시나리오인 것이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환생꽃이다. 동굴에서 죽은 소년을 발견한 소녀는 망연자실(茫然自失)한다. 그것도 잠시, 소년이 죽기 전 소녀에게 미리 알려 주었던 동굴의 환생꽃을 떠올린다. 환생꽃은 뼈를 붙게 하는 뼈살이꽃, 뼈에 살이 붙게 하는 살살이꽃, 살에 숨이 붙게 하는 숨살이꽃으로 이루어져 있다. 꽃에 색깔이 부여될 때는 흰 꽃은 살을, 붉은 꽃은 피를, 푸른 꽃은 힘줄을 생성시킨다고 이야기된다. 꽃 대신 병이나 봉지가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꽃이 압도적이다. 꽃으로 사람을 살리는 화소는 무속 신화인 <바리데기>, <세경본풀이>, <이공본풀이>에도 등장한다.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연이와 버들도령』의 표지, 책읽는곰, 2022년
출처: 교보문고
이야기의 선후관계를 따지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환생꽃으로 살아난 소년은 “한숨 잘 잤다”라고 말하면서 일어나는데 이는 <바리데기>의 아버지, <세경본풀이>의 정수남과 문도령, <이공본풀이>의 원강아미에게서도 똑같이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바리데기>에서는 뼈살이꽃, 살살이꽃, 숨살이꽃이라는 환생꽃의 명칭이 그대로 나타난다. 이 이야기와 <바리데기> 사이에 일종의 영향 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바리데기는 불치병에 걸린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약수와 환생꽃을 구하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아버지는 바리데기를 버린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소녀를 학대하는 계모와 마찬가지로 악인으로 볼 수도 있다. 소녀 역시 여정을 떠난다. 다만 소녀의 여정은 엄동설한에 산나물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 이미 이야기한 바와 같이 소녀의 여정에는 계모의 계략이 숨어 있다. 바리데기가 아버지의 삶을 위한 여정을 떠난 것이라면 소녀는 자신의 죽음을 위한 여정을 떠난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바리데기>에서 약수와 환생꽃은 그 자체가 주인공의 목적이 되지만 <연이낭자와 버들도령>에서 환생꽃은 주인공에게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소녀가 버들도령을 구하기 위해 남장을 하고 환생꽃을 찾으러 여정을 떠나는 각편도 있다. 그러나 이는 극히 일부 사례일 뿐이다.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동굴 안에서 환생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봄날이여 영원하라」 | 신윤복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또 다른 여정을 떠날 필요 없이 신비한 동굴이 이미 환생 꽃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바리데기에게 서천서역(이승의 끝)이 시련을 안겨 준 공간이었다는 사실과 비교해 볼 때 극명히 대립되는 동굴의 공간적 성격을 잘 보여 준다. 바리데기는 서천서역에서 환생꽃을 얻기 위해 물 3년, 불 3년, 나무 3년, 동수자의 세 아들 출산 등 여러 고난을 거친다. 반면 신비한 동굴에서 소년은 아무런 조건 없이 소녀가 원하는 것을 내준다. 전승에 따라 소년은 직접 쌀을 씻어 소녀에게 따뜻한 밥 한 상을 차려 주기도 한다. 동굴 밖에서 늘 소녀가 계모를 보살피는 역할을 했다면 동굴 안에서 처음으로 소녀는 소년으로부터 보살핌을 받는 역할이 되어 본다. 서천서역이 신성과 그것을 위한 조건부 고난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면 오히려 신비한 동굴은 무조건적 돌봄과 애정으로 충만한 유토피아의 공간이다.
바리데기는 환생꽃을 얻는 순간, 곧바로 서천서역을 떠나 아버지가 계시는 곳으로 돌아온다. 서천서 역행은 뚜렷한 목적을 지니는 일회적 여정이다. 목적을 완수했으니 더 머무를 필요가 없다. 하지만 소녀는 환생꽃으로 죽은 소년을 살리고 소년과 무지개를 타고 천상으로 가기 전까지 계속해서 집과 동굴을 오간다. 계모가 산나물을 구해 오라고 거듭 요구하기 때문이다. 사실 소녀는 계모의 요구를 거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녀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소녀의 수동적 면모는 아이러니를 자아낸다. 소녀는 왜 소년이 있는 동굴에 쭉 머무르지 않고 계모가 있는 끔찍한 집으로 자꾸 돌아가는 것일까? 혹자는 소녀의 귀가가 소녀의 효심 때문이라고 말한다. 계모 설화에 등장하는 소녀 중 효심으로 똘똘 뭉치지 않은 이는 없다. 설화에서 소녀의 나이가 일곱 살, 혹은 열서너 살 정도로 명시된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어린아이에게 계모와 집의 존재는 절대적이었을 것이다. 끊임없는 계모의 괄시가 기다리고 있는 집일지라도 그 집 말고는 달리 돌아갈 공간을 떠올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 소녀에게 소년의 죽음은 각성의 계기가 된다. 소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짧은 이야기이지만 <연이낭자와 버들도령>은 계모의 지독한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된 자아로 서기까지 소녀가 점진적으로 성숙해지는 과정도 담고 있다.
현대의 ‘연이낭자와 버들도령’
1990년 1월 12일 KBS에서 방영된 <배추도사 무도사의 옛날옛적에> ‘연이낭자와 버들도령’ 에피소드는 이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알리고 ‘연이낭자와 버들도령’이라는 명칭이 자리 잡게 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이 에피소드에서 연이에게 못된 짓을 할 때마다 마귀의 형상으로 변신하는 계모의 모습은 악인으로서 계모의 이미지를 충실하게 재현한다. 연이가 수난을 당할 때마다 배경에 있는 버들잎이 번쩍거리는데, 이는 버들도령의 존재를 암시한다. 연이를 계속 지켜보던 버들도령은 산속을 떠돌던 연이가 눈밭에 쓰러지자 버들잎을 문 토끼를 보내 직접 동굴로 안내하도록 한다. 하늘에서 온 동자로 설정된 버들도령은 이 에피소드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원조자로서의 역할을 소화해 낸다.
백희나(2022)의 그림책 『연이와 버들도령』은 계모를 ‘나이 든 여인’으로 지칭한다. 계모에 대한 편견을 깨는 설정일 뿐 아니라 작가의 말대로 각자 자기의 상황에 맞춰 캐릭터를 해석할 수 있게 하는 설정이다. 작가에 따르면 나이 든 여인은 언니일 수도, 선생님일 수도, 혹은 부모일 수도 있다. 그림책에 서 나이 든 여인은 연이에게 일을 과하게 시킬 뿐, 나쁜 짓을 하지는 않는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아이들에게 공부를 많이 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나이 든 여인이 돌이킬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르게 되는 것은 혼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한 극심한 공포에서 기인한다. 버들도령을 죽이려 달려들 때 나이 든 여인은 “네가 감히 우리 연이를 꾀어내!”라고 외친다. 그리고 버들도령을 죽인 다음 날 연이에 게 아무 일도 시키지 않는다. 설화와 달리 그림책에서 나이 든 여인은 연이가 죽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연이가 자신을 떠날까 봐 두려워한다. 그림책은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또 그림책에서 연이와 버들도령의 얼굴은 성별만 다르게 나타날 뿐 생김새가 동일하다. 마치 연이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세계에서 버들도령으로 살아가는 자기 자신이라는 듯이. 백희나의 그림책은 백마 탄 왕자로부터 소녀가 구원받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유형의 이야기로 이 이야기가 해석되지 않게끔 한다.

(좌) <배추도사 무도사의 옛날옛적에> ‘연이낭자와 버들도령’ 중
출처: KBS
(우) <신비아파트 전래동화-연이낭자와 버들도령> 중
출처: 유튜브 ‘헬로라라’ 채널
<연이낭자와 버들도령>은 ZEPETO(이하 ‘제페토’)에서 탄생한 아바타를 활용해 유튜브 전래동화 영상으로 재창작되기도 한다. 제페토는 네이버 자회사 SNOW에서 출시한 3D 아바타 제작 애플리케이션으로 현재 2억 명 이상이 사용하고 있다. 한 유튜버는 투니버스 애니메이션 <신비아파트>의 등장인물인 가은, 이안, 사라, 현우의 캐릭터를 각각 연이낭자, 버들도령, 계모, 친부로 분하게 한 영상을 자신의 채널에 업로드했다. 전반적으로 캐릭터의 얼굴이 크게 강조되었고 연이와 계모는 나이 차이가 거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한 생김새를 지니고 있다. <신비아파트>의 캐릭터를 활용하다 보니 원작에는 없던 <신비아파트>의 등장인물 하리와 두리가 연이의 친구로 등장해 풀 뽑기에 지친 연이를 위로해 주기도 한다. 해당 영상은 2024년 7월 현재, 15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신비아파트>의 캐릭터를 활용해 영상을 만든 것에 찬사와 감탄을 보내는 댓글이 대부분이지만 <연이낭자와 버들도령> 이야기에 대해 재미와 감동을 표하는 댓글도 적지 않다.
계모의 박대로 엄동설한에 산나물을 구하는 소녀와 주문을 통해 진입할 수 있는 신비한 동굴의 세계, 그 세계에서 소녀를 따스하게 맞아 주는 소년의 존재, 환생꽃을 통한 죽음의 극복과 소년과 소녀의 승천 혹은 결혼이라는 낭만적 결말의 이 이야기는 이렇듯 매체를 달리하며 사랑받고 있다. <연이낭자와 버들도령> 이야기에서 설동에 무언가를 구해 오기 위해 소녀가 고군분투하는 전반부는 일본의 <의붓자식의 딸기 구해 오기>나 다른 유럽 설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동굴로 설정된 이계는 이 이야기가 지니는 독보적인 지점이다. 특히 동굴을 여는 주문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야기에 흥미를 갖게 하는 동시에 이야기 자체에 매료되어 버리게 만든다. 주문이 외쳐질 때 우리도 연이낭자와 똑같은 마음이 되어 가슴 벅찬 설렘과 흥분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버들도령, 버들도령, 연이낭자 왔다, 문 열어라.”
참고문헌
김경희, 「메타버스 콘텐츠를 활용한 옛이야기의 미래」, 『아동청소년문학연구』30, 아동청소년문학학회, 2022.
박연숙, 『한국과 일본의 계모설화 비교 연구』, 민속원, 2010.
백희나, 『연이와 버들도령』, 책읽는곰, 2022.
이후남, <새 그림책 ‘연이와 버들도령’ 낸 백희나 작가 “연이가 날 살렸죠”>, 《중앙일보》, 2022년 1월 12일자.
헬로라라, <신비아파트 전래동화-연이낭자와 버들도령>, 유튜브 ‘헬로라라’ 채널, 2020. 1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