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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 강원도 평창 메밀꽃밭에 핀 이효석의 문학과 삶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7-12-20 조회수 : 3516
 
 
  이효석의 삶과 문학을 총망라한 ‘이효석문학관’
  이효석문학관은 2002년 9월에 개관하여 올해로 15년을 맞았 다. 총 부지 2만 5,000여 평에 이효석문학전시실, 메밀자료실, 문학교실, 학예연구실, 기타 관리실 및 카페 등 부속시설로 이 루어져 있다. 문학전시실에서는 가산 이효석 선생의 연보를 시작으로 선생의 삶과 문학의 세계, 그리고 1925년부터 1942 년까지 선생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중앙 복도를 따라가면서 동 시대를 함께한 작가들의 작품 이 기획 전시되어 있고 전시관 안쪽으로 전주이씨 족보를 시 작으로 경성제일보고현 경기고등학교 시절 성적표와 경성제국대학 현 서울대학교 졸업논문 표지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작품 활 동 기간은 짧았지만 이효석 선생이 남긴 140여 점의 작품 중 75점이 출판 당시의 잡지로 전시되어 있고, 일부 육필 원고도 전시되어 있다.

  또한 1910년대의 봉평장터를 모형으로 재현해 과거 봉평 장터의 모습과 이효석 선생의 고향을 볼 수 있게 꾸며 놓았다. 특히 1934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평양으로 이사 온 이후 두 번 째 살았던 창전동의 푸른 집 거실이 전시실 한쪽에 마련되어 있어 관람객의 흥미를 더해주고, 마당 잔디밭 한가운데에 가산 이효석 선생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푸른 집 거실 전경을 묘사한 동상을 설치해 선생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안겨 주고 있다. 문학관 본관에는 문학교실이 마련되어 있어 이효 석 선생의 문학세계와 삶을 정리한 영상물, 문학강연 그리고 매년 심포지엄과 다양한 문학・문예행사가 열리고 있다.

  문학관 뒷동산을 오르면 봉평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소 나무 숲 벤치에 앉아 즐겁고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이효석 선생의 절친이었던 현민 유진오 선생이 친필로 쓴 가 산 이효석 문학비가 문학관을 내려오는 오솔길 입구에 세워져 있다.

 
 


  고향에 대한 애달픈 그리움으로 피워낸 걸작들
  작가 이효석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작품 <메밀꽃 필 무렵> 이다. 이는 그의 짧은 40평생뿐만 아니라 30년대 우리나라 단 편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그는 <돈豚>을 발표한 1933년을 기점으로 과거의 사회의식적 소설을 지양하고 한국적인 자연 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자연 속에 포함된 순박한 인간성을 주제로 그들의 애욕 문제를 파헤쳤다. <메밀꽃 필 무렵>도 이 러한 경향에서 1936년 <조광>에 발표된 작품이다. 어린 이효 석이 100리 길을 걸어 평창공립보통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산 과 강 그리고 장에서 장으로 옮겨 다니는 장돌뱅이들의 모습 을 이효석은 1936년 고향을 일찍 떠난 평양에서 그려냈다. 

  <메밀꽃 필 무렵>은 한국 현대 단편소설 중에서 가장 뛰 어난 작품으로 만남과 헤어짐, 그리움, 떠돌이의 애수 등이 아 름다운 자연과 융화되어 미학적인 세계로 승화된 단편소설 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사회의식을 지양하 고 한국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인간의 순박한 본성 을 그려내는 주제의식과 달밤의 메밀밭을 묘사한 시적인 문체 가 뛰어나 우리 문학의 수준을 한층 더 높이는 데 기여한 작품이다. 그의 고향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은 다양한 글들 속에 잘 나타나고 있다. 이효석의 작품 중에서 넓게는 영서 체험, 좁게 는 봉평면을 작품의 배경이나 소재로 한 것들은 <메밀꽃 필 무 렵>, <산협山峽>, <개살구>, <고사리>, <들>, <산> 등 모두 5편의 단편소설이다. 이중에서 <메밀꽃 필 무렵>과 <산협>, <개살구> 에는 ‘봉평’과 부근의 지명이 실명으로 명시되어 있어 고향의 모습과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을 잘 볼 수 있다. 

나는 고향에 관한 시절의 글을 부탁받을 때마다 나는
언제든지 잠시간은 어느 것 이야기를 썼으면 좋을까를
망설이고 주저한다. 나의 반생을 푸근히 감싸주고 생각과
감정을 그 고장의 독특한 성격에 맞도록 눅진히 길러준
고향이 없기 때문이다. 

<영서의 기억> 중에서
 
 
 
  이효석 선생이 이처럼 아름다운 문체로 소설을 쓸 수 있 었던 것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에 대한 기억이 간절하고 그 리움이 컸기 때문인지 모른다. 자신이 태어난 봉평에서의 기 억들이 세월 속에 조금씩 잊혀 가던 1931년, 모 잡지사 기자 와의 인터뷰에서 이효석 선생은 자신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묻는 기자에게 “나는 고향이 없어요”라고 답을 하였다. 
  이효석은 평창공립보통학교 졸업 전에 집이 봉평에서 진 부면으로 이사한 이후 자신이 태어난 고향 봉평으로 다시 오 지를 못했다. 유년기 시절의 기억 속에 유달리 기억될 만한 추 억이 없다는 이효석에게는 말 그대로 별 의미 없는 고향이라 는 뜻으로 이해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메밀꽃밭과 봉평장터는 이효석 문학의 기름진 토양
  이야기는 1936년 평양으로 이사해 창전동에 머물 당시 푸른 집의 작은 서재 탁자 위에서 시작된다. 
 
여름장이란 애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려놓은 전 휘장 맡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나이 서른에 이효석은 봉평의 옛날 장터의 모습을 그리 기 시작한다. 효석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싸주던 주먹밥을 들 고 봉평 남안동집에서 흥정천을 건너 물레방앗간을 지나고 충 주집 마당에 들어서 장돌뱅이들이 술을 마시는 마당좌대 귀퉁 이에 걸터앉아 어머니가 만들어준 주먹밥을 먹곤 하였다. 여 름이면 흥정천 개울가로 내려가 물고기를 잡았고 미역도 감았 다. 그리고 봉평장터와 장돌뱅이들 모습이 어린 효석의 마음 속에 서서히 자리하였다.

  봉평에서 평창까지의 거리는 100여 리. 이 때문에 어린 효석은 지금의 초등학교 시절당시는 평창공립보통학교 평창에서 하 숙을 하였는데, 주말 또는 방학 때 집을 다녀가곤 하였다. 집에 서 나와 산언저리를 끼고 나오면 보이는 곳이 메밀밭이었고, 1 시간가량 걸어 노루목재 고개를 넘고 여울목 강을 건너야 대 화로 갈 수 있었다. 두어 시간 남짓 흘러 대화장터를 지나 저 녁이 한참 지나서야 어둠이 깔린 하숙집 마당에 들어설 수 있 었다. 어린 효석의 감성적 문학토양의 기초는 본인이 걸었던 100여 리 길에서 보고 느낀 그대로의 자연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장돌뱅이의 여 정, 장에서 장으로의 길은, 어린 이효석이 걸어 다닌 길과 일치 하고 있다. 어린 이효석은 이 길에서 많은 사람과 스치며 장돌 뱅이들의 얼굴과 당나귀의 모습을 보아왔던 것이다. 그네들의 힘든 여정 속에 변해 가는 찌그러진 얼굴과 당나귀의 지친 숨 소리조차 이효석에게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하얀 메밀꽃을 닮은 아름다운 작가, 이효석
  이효석! 한 인간으로서의 삶은 안타깝다. 그러나 문학인으로 서의 삶은 결코 안타깝지 않다. 암울하던 일제 치하 속에 자유 롭지 못한 고독한 작가 중 한명인 이효석. 그가 남긴 140여 편 의 수필과 소설, 콩트, 희곡, 평전, 번역서들. 세상에서 가장 존 귀한 사람은 시인이라고 했고,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문인 이고자 했던 가산 이효석.

  암울했던 시대에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통하여 고 향과 소통하고 새로운 문화적 삶과 소통하고자 했던 하얀 메 밀꽃과도 같은 아름다운 작가. 그는 분명 세상 모든 사물과의 대화를 통한 자신만의 표현방식에 몰입하였고 자연의 아름다 움과 인간의 순수한 내면의 세계와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미학 을 찾아 고독하리만치 아픔을 겪어낸 천재 작가였다. 이효석 이 그려낸 고향 이야기는 지금도 아름다운 메밀꽃밭과 5일장 으로 이어져 우리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

  짧은 삶 속에 그가 남긴 문학의 감동은 결코 불행하지 않 고, 진정 이 시대의 아름답고 행복한 작가였다. 가을 하늘 아래 문학이 쉬고 이효석 선생이 쉬는 공간에서 소설 <메밀꽃 필 무 렵>을 다시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기대하며, 시대에 무관한 탐 미주의자이자 자신만이 느끼는 심미주의 세계에서 고독한 작 가이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에나멜 구두를 신고 서구적 낭만주 의인 모더니스트의 길을 가고자 했던 천재 작가 이효석 선생 을 생각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 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1936년 조광지 10월호에 실린 <메밀꽃 필 무렵>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