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이효석문학관은 2002년 9월에 개관하여 올해로 15년을 맞았 다. 총 부지 2만 5,000여 평에 이효석문학전시실, 메밀자료실, 문학교실, 학예연구실, 기타 관리실 및 카페 등 부속시설로 이 루어져 있다. 문학전시실에서는 가산 이효석 선생의 연보를 시작으로 선생의 삶과 문학의 세계, 그리고 1925년부터 1942 년까지 선생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중앙 복도를 따라가면서 동 시대를 함께한 작가들의 작품 이 기획 전시되어 있고 전시관 안쪽으로 전주이씨 족보를 시 작으로 경성제일보고현 경기고등학교 시절 성적표와 경성제국대학 현 서울대학교 졸업논문 표지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작품 활 동 기간은 짧았지만 이효석 선생이 남긴 140여 점의 작품 중 75점이 출판 당시의 잡지로 전시되어 있고, 일부 육필 원고도 전시되어 있다.
또한 1910년대의 봉평장터를 모형으로 재현해 과거 봉평 장터의 모습과 이효석 선생의 고향을 볼 수 있게 꾸며 놓았다. 특히 1934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평양으로 이사 온 이후 두 번 째 살았던 창전동의 푸른 집 거실이 전시실 한쪽에 마련되어 있어 관람객의 흥미를 더해주고, 마당 잔디밭 한가운데에 가산 이효석 선생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푸른 집 거실 전경을 묘사한 동상을 설치해 선생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안겨 주고 있다. 문학관 본관에는 문학교실이 마련되어 있어 이효 석 선생의 문학세계와 삶을 정리한 영상물, 문학강연 그리고 매년 심포지엄과 다양한 문학・문예행사가 열리고 있다.
문학관 뒷동산을 오르면 봉평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소 나무 숲 벤치에 앉아 즐겁고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이효석 선생의 절친이었던 현민 유진오 선생이 친필로 쓴 가 산 이효석 문학비가 문학관을 내려오는 오솔길 입구에 세워져 있다.
고향에 대한 애달픈 그리움으로 피워낸 걸작들
작가 이효석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작품 <메밀꽃 필 무렵> 이다. 이는 그의 짧은 40평생뿐만 아니라 30년대 우리나라 단 편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그는 <돈豚>을 발표한 1933년을 기점으로 과거의 사회의식적 소설을 지양하고 한국적인 자연 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자연 속에 포함된 순박한 인간성을 주제로 그들의 애욕 문제를 파헤쳤다. <메밀꽃 필 무렵>도 이 러한 경향에서 1936년 <조광>에 발표된 작품이다. 어린 이효 석이 100리 길을 걸어 평창공립보통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산 과 강 그리고 장에서 장으로 옮겨 다니는 장돌뱅이들의 모습 을 이효석은 1936년 고향을 일찍 떠난 평양에서 그려냈다.
<메밀꽃 필 무렵>은 한국 현대 단편소설 중에서 가장 뛰 어난 작품으로 만남과 헤어짐, 그리움, 떠돌이의 애수 등이 아 름다운 자연과 융화되어 미학적인 세계로 승화된 단편소설 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사회의식을 지양하 고 한국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인간의 순박한 본성 을 그려내는 주제의식과 달밤의 메밀밭을 묘사한 시적인 문체 가 뛰어나 우리 문학의 수준을 한층 더 높이는 데 기여한 작품이다. 그의 고향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은 다양한 글들 속에 잘 나타나고 있다. 이효석의 작품 중에서 넓게는 영서 체험, 좁게 는 봉평면을 작품의 배경이나 소재로 한 것들은 <메밀꽃 필 무 렵>, <산협山峽>, <개살구>, <고사리>, <들>, <산> 등 모두 5편의 단편소설이다. 이중에서 <메밀꽃 필 무렵>과 <산협>, <개살구> 에는 ‘봉평’과 부근의 지명이 실명으로 명시되어 있어 고향의 모습과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을 잘 볼 수 있다.
나는 고향에 관한 시절의 글을 부탁받을 때마다 나는
언제든지 잠시간은 어느 것 이야기를 썼으면 좋을까를
망설이고 주저한다. 나의 반생을 푸근히 감싸주고 생각과
감정을 그 고장의 독특한 성격에 맞도록 눅진히 길러준
고향이 없기 때문이다.
<영서의 기억> 중에서
이효석은 평창공립보통학교 졸업 전에 집이 봉평에서 진 부면으로 이사한 이후 자신이 태어난 고향 봉평으로 다시 오 지를 못했다. 유년기 시절의 기억 속에 유달리 기억될 만한 추 억이 없다는 이효석에게는 말 그대로 별 의미 없는 고향이라 는 뜻으로 이해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이야기는 1936년 평양으로 이사해 창전동에 머물 당시 푸른 집의 작은 서재 탁자 위에서 시작된다.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려놓은 전 휘장 맡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나이 서른에 이효석은 봉평의 옛날 장터의 모습을 그리 기 시작한다. 효석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싸주던 주먹밥을 들 고 봉평 남안동집에서 흥정천을 건너 물레방앗간을 지나고 충 주집 마당에 들어서 장돌뱅이들이 술을 마시는 마당좌대 귀퉁 이에 걸터앉아 어머니가 만들어준 주먹밥을 먹곤 하였다. 여 름이면 흥정천 개울가로 내려가 물고기를 잡았고 미역도 감았 다. 그리고 봉평장터와 장돌뱅이들 모습이 어린 효석의 마음 속에 서서히 자리하였다.
봉평에서 평창까지의 거리는 100여 리. 이 때문에 어린 효석은 지금의 초등학교 시절당시는 평창공립보통학교 평창에서 하 숙을 하였는데, 주말 또는 방학 때 집을 다녀가곤 하였다. 집에 서 나와 산언저리를 끼고 나오면 보이는 곳이 메밀밭이었고, 1 시간가량 걸어 노루목재 고개를 넘고 여울목 강을 건너야 대 화로 갈 수 있었다. 두어 시간 남짓 흘러 대화장터를 지나 저 녁이 한참 지나서야 어둠이 깔린 하숙집 마당에 들어설 수 있 었다. 어린 효석의 감성적 문학토양의 기초는 본인이 걸었던 100여 리 길에서 보고 느낀 그대로의 자연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장돌뱅이의 여 정, 장에서 장으로의 길은, 어린 이효석이 걸어 다닌 길과 일치 하고 있다. 어린 이효석은 이 길에서 많은 사람과 스치며 장돌 뱅이들의 얼굴과 당나귀의 모습을 보아왔던 것이다. 그네들의 힘든 여정 속에 변해 가는 찌그러진 얼굴과 당나귀의 지친 숨 소리조차 이효석에게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하얀 메밀꽃을 닮은 아름다운 작가, 이효석
이효석! 한 인간으로서의 삶은 안타깝다. 그러나 문학인으로 서의 삶은 결코 안타깝지 않다. 암울하던 일제 치하 속에 자유 롭지 못한 고독한 작가 중 한명인 이효석. 그가 남긴 140여 편 의 수필과 소설, 콩트, 희곡, 평전, 번역서들. 세상에서 가장 존 귀한 사람은 시인이라고 했고,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문인 이고자 했던 가산 이효석.
암울했던 시대에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통하여 고 향과 소통하고 새로운 문화적 삶과 소통하고자 했던 하얀 메 밀꽃과도 같은 아름다운 작가. 그는 분명 세상 모든 사물과의 대화를 통한 자신만의 표현방식에 몰입하였고 자연의 아름다 움과 인간의 순수한 내면의 세계와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미학 을 찾아 고독하리만치 아픔을 겪어낸 천재 작가였다. 이효석 이 그려낸 고향 이야기는 지금도 아름다운 메밀꽃밭과 5일장 으로 이어져 우리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
짧은 삶 속에 그가 남긴 문학의 감동은 결코 불행하지 않 고, 진정 이 시대의 아름답고 행복한 작가였다. 가을 하늘 아래 문학이 쉬고 이효석 선생이 쉬는 공간에서 소설 <메밀꽃 필 무 렵>을 다시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기대하며, 시대에 무관한 탐 미주의자이자 자신만이 느끼는 심미주의 세계에서 고독한 작 가이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에나멜 구두를 신고 서구적 낭만주 의인 모더니스트의 길을 가고자 했던 천재 작가 이효석 선생 을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