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 개 그림 속에 담긴 염원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동물에는 사슴, 학, 거북, 기린, 봉황 등이 있다. 반면에 해태, 닭, 개, 호랑이, 용, 말, 뱀 등의 동 물은 수호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민화 속의 대표적인 세화歲畵를 살펴보면, 사랑채와 안채 사이의 중문에는 귀신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닭 그림 을, 대문에는 호랑이 그림을 붙여 질병이나 액운이 들어오 지 못하도록 하였다. 또한 부엌문에는 해태 그림을 붙여 화 재를 예방하였으며, 곳간문에는 개 그림을 붙여 도둑을 막 았다. 세화 속에서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먹거리를 지켜주던 개는 동물 가운데 인류와 가장 먼저 함께 살아온 동물 로, 인간과 친밀하고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민화, 민 담, 민속 속에서 개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일 듯하 다. 우리의 옛 문헌에서는 아홉 종류의 토종개를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귀신 잡는 삽살개, 호랑이 잡는 개로 알려진 풍산개, 눈・코・발톱이 붉은색을 띤 소백산 지역의 불개, 꼬리가 없는 경주의 댕견, 주인을 구해주고 대신 불타 죽었 다는 오수개, 영리하기로 이름난 진돗개와 해남개, 거제개, 제주개 등이다.

  이처럼 개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늘 인간의 주위에서 공존해 온 동물이다. 때로는 구박과 멸시와 버림을 받고, 자신의 몸을 주인을 위해 희생하기도 한다. 사람은 개를 버 려도 개는 사람을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 도이다. 개는 우리의 고전문학은 물론 설화나 민담 속에 또 는 전통회화에서는 민화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풍경처럼 존재하고 있다. 

  개오륜
  현실 속의 개는 오랜 시간 인간과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만큼 친숙하고 가까운 존재였다. 우리 선조들은 개를 의인 화하여 개의 행태를 오륜五倫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주인에게 덤비지 않는 것불범기주不犯基主=군신유의君臣有義, 큰 개에게 작은 개가 덤비지 않는 것불범기장不犯基長=장유유서長幼有序, 아비의 털빛을 새끼가 닮은 것부색자색父色子色=부자유친父子有親, 때 가 아니면 어울리지 않는 것유시유정有時有情=부부유별夫婦有別, 한 마 리가 짖으면 온 동네의 개가 다 짖는 것일폐군폐一吠群吠=붕우유신 朋友有信 등이다. 이 같은 오륜은 어디까지나 유교를 숭상하 던 우리 민족의 윤리이다. 개의 행동에 이러한 의미를 부여 한 것은 개를 다른 동물과 차별화함으로써 개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충성과 의리의 의구비義狗碑
  충성과 의리를 갖추고 우호적이며 희생적인 행동을 보여 준 대표적인 개 이야기는 전북 임실군 오수리에서 전해지 고 있다. 고려시대의 시화집인 <보한집補閑集>에서는 김개 인金蓋人이란 사람이 마을 잔칫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술에 취해 둑에서 잠이 들었는데 근처에서 불이 나 번지기 시작하였다.

  주인을 지키고 있던 개는 주인을 향해 맹렬히 짖어대 고 흔들어 봤지만 주인은 인사불성이라 위험하게 되었다. 개는 급히 물에 뛰어들어 온몸에 물을 적셔와 뒹굴어 주인을 구하였다. 술에서 깨어난 주인은 불을 막아주고 기진맥진 하여 죽은 개를 발견하고, 슬퍼하며 무덤을 만들어주고 나무 를 꽂아 비를 세웠다고 한다. 이후 그 나무 비석에 잎이 피고 뿌리가 돋아 살아나자 “개나무”라는 뜻으로 ‘오수獒樹’라 불 렀으며, 그것이 지명이 되어 오늘날에도 전해진다.
  
  이 밖에 목숨을 바쳐 주인을 구해준 전남 낙안읍성의 의구비, 경북 선산의 구총, 개성의 벼슬개, 독극물이 든 물건 을 주인 대신 개가 받아먹거나 억울하게 죽은 주인의 원수 를 갚았다는 등 개가 인간의 아둔함을 지켜주고 막아주었다 는 이야기들의 기록은 전국 25개의 장소에서 찾아볼 수 있 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개를 잘못된 인생이나 팔자, 욕, 행동, 언행, 심성, 음식, 하찮고 형편없는 것들을 지 칭하거나 비유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사람들의 사고체계와 다름없는 언어의 체계 속에서 사용되는 개의 모습은 사뭇 다른 것이다.

  이처럼 개를 멸시하는 언어체계가 존재하는 한편 개를 신령스러운 존재로 격상시켜 생각하는 문화가 공존하고 있 다. 그 근거를 우리나라의 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옛사람들 은 개가 액厄을 막아주고 죽은 이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해 주는 길잡이라고 생각했다.




  귀신 잡는 개
  우리 민족은 예부터 삶의 안식처인 집을 지을 때는 소위 양 지 바른 곳이라 불리는 명당을 택하여 재물이나 자손의 번 창을 기원하였다. 이때 터에 삿된 기가 있다고 판단되는 곳 에서는 예부터 털북숭이 같은 삽살개를 길렀다.

  삽살개는 ‘신선 개’ ‘귀신 잡는 개’ ‘삽사리’ ‘하늘 개’ 등 으로도 불리는데, 이 개 근처에는 귀신이 얼씬도 못한다고 믿어 왔다. 이미 신라시대부터 있었다는 기록과 함께 우리말 의 ‘삽’은 “없앤다” 또는 “쫓는다”의 의미이고 ‘살煞’은 귀신 또는 액운으로 풀이된다. 수천 년 동안 우리의 자연 환경 속 에서 함께 적응하고 터 잡아 온 토종 삽살개는 주인에게 한 번 정을 주면 더없이 충직하게 목숨을 걸고 복종하는 형이 다.  일반적인 개에 비해 작고 야무진 체구에 온몸의 털 때문 에 눈・코・귀도 구별이 가지 않는 삽살개는 얼핏 보면 어 수룩해 보인다. 그러나 영민하고 영특하여 멀리 있는 귀신의 소리와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다고 여겨질 만큼 청각과 후 각이 고도로 발달하였다. 
 
  민화 속에는 흰 개가 많이 등장하는데 종교적인 측면 에서 살펴보면, 개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매개체의 기능 을 수행하는 동물로 인식되어 있다. 무속신화인 본풀이에서 이승과 저승, 저승과 이승의 안내는 흰 강아지가 한다고 믿 었다. 그 때문인지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개 그림이 나타나 고, 신라 무덤 속에서도 흙으로 만들어 구운 개 형상이 많이 발굴되기도 한다. 왜 흰 강아지가 저승길을 인도하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개는 후각이나 시각이 인간에 비해 수천 배 발달하여 한 번 갔던 길은 절대 잃지 않고 찾아가기 때문 에 그렇게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티베트와 동남아 산간지 역에서는 지금도 부모가 죽으면 개로 현신한다고 믿어 개를 먹지 않고 신성시하고 있다. 



  네눈박이 개
  민화의 일종으로 벽사적辟邪的 성격을 띤 네눈박이 또는 세 눈박이 개 그림을 부적처럼 그린 그림이 있다. 환생 설화를 믿는 불교에서는 전생에 사람이었던 자가 개로 환생하여 삼 목대왕三目大王으로 대우를 받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합천 해인사 근처 합주에 사는 이거인李居仁이 어느 날 길에서 눈이 셋 달린 강아지를 데려와 길렀는데 3년 만에 이 유 없이 죽어 버렸다. 이후 주인도 죽어 저승길을 가는데 첫 째 관문에서 삼목대왕을 만났다. 삼목대왕은 자신이 죄를 지 어 개의 형상으로 잠시 이승에 태어났을 때 보살펴 준 주인 을 알아보고 은혜를 갚아 그가 다시 살아났다.”

  이 때문에 불교에서는 개고기를 멀리하고 개소리와 닭 소리가 들리지 않는 청정도량을 좋은 사찰로 여겼다. 개는 눈과 눈 사이가 멀어 넓게 보이는데도 그림을 그리는 민중 들은 무의식 속에서 더더욱 어둠에서도 잘 보이도록 네눈이 나 세눈박이 개로 그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신구도神狗圖’라는 액막이 부적이 서민들 사이에 서 성행하였다. 신구도는 도둑을 막는 개를 그린 그림이다. 신구도에서 개는 용맹스럽고 다소 과장된 모습을 하고 있는 데, 개를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여느 액막이 부적처럼 벽사 의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개는 인간의 역사와 늘 함께하며 인간의 주위에서 사랑을 받기도 하고, 구박과 멸시를 받기도 한다. 개는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마치 풍경 처럼 존재해 온 것이다.  한국 문화 속의 개는 충성과 의리의 충복, 심부름꾼, 애완견, 안내자, 지킴이, 조상의 환생 등 다 양한 모습으로 인간의 동반자가 되어 오늘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