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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 훈민정음과 한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6-10-05 조회수 : 10659


우리는 훈민정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나라 사람 중에 한글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것에 대해 대답을 하지 못할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이지만, 막상 한글이나 훈민정음의 정확한 뜻을 묻거나 외국인에게 훈민정음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을 것이다. 한글날까지 만들어 기념하고 있는데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것은 한글이나 훈민정음이 어려워서 그렇다기보다는 평소에 이들에 대하여 깊은 인식을 하고 있지 않았던 우리 자신에게 그 원인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쉽게 말해서 대한민국이 자랑할 수 있는 세계적인 문화유산 중 하나인 훈민정음에 대해 일상적인 국민적 관심은 그리 높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한글에 대해 확실하게 의미를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과 훈민정음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할 내용을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우선 한글의 의미가 매우 불명료하게 쓰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글날이 되면 여기저기에서 한글과 한국어를 동의어로 사용하는 현상을 자주 목격한다.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한글’을 찾아보면 ‘우리나라 고유의 글자’라고 풀이하면서 ‘훈민정음을 20세기 이후 달리 이르는 명칭’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글학회에서 발간한 우리말큰 사전은 ‘한글’을 ‘우리나라 글자의 이름’이라고 풀이하고 있으며, 연세대학교에서 발간한 연세한국어사전은 ‘한국의 글 흥해라 문화유산 글. 이승재. 국립한글박물관 연구교육과장 자, 또는 그것의 이름’으로 풀이하고 있다.

현재까지 나와 있는 사전을 참조하면 한글의 뜻에 큰 혼란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한글이 세계 공용어가 됐으면…’과 같이 신문에 등장하는 표현을 보면 지금까지 살펴본 사전상의 뜻과 맞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한글은 언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문자를 가리키는 말이기에, 이를 대입하여 해석하면 위의 표현에서처럼 한글이 세계 공용어가 되기는 힘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한글이 가진 상징성이 워낙 강해서인지 도처에서 ‘한국어’를 사용해야 할 자리에 ‘한글’을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부터라도 문자인 ‘한글’과 언어인 ‘한국어’를 명확하게 구별하여 사용하도록 하자.





훈민정음은 정보혁명의 선두주자
세종대왕께서 후손들에게 남겨주신 것은 ‘훈민정음’으로 이름 지어진 우리 고유의 문자 ‘한글’이다. ‘한글’은 예부터 존재해왔던 우리말한국어을 적절하게 표기하기 위하여 만들어졌고, 이는 오늘날 현대 국어에 맞게 다듬어져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훈민정음’은 우리 민족에게 문자 제공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인터넷이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을 살펴봄으로써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인터넷의 보급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인터넷은 단지 새로운 기술의 보급에 그친 것이 아니라 정보 공급자와 정보 수요자의 지위를 바꾸어놓을 정도로 정보혁명을 일으켰다. 다시 말해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에는 수요자보다 공급자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유리한 위치에서 생산과 유통 활동을 하였다. 그런데 인터넷이 보급되고 온라인 상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인터넷을 통한 각종 가격 정보가 공개, 공유되었고, 이러한 정보를 획득한 수요자는 공급자와 거의 대등한 위치에서 상거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이라는 기술의 보급이 우리 생활 전반에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 온 것이다. 이러한 정보혁명이 우리에게는 15세기에 일어났는데 그것은 바로 훈민정음을 통한 것이었다. 한자를 알아야만 모든 정보를 획득할 수 있었던 시대에 훈민정음이 만들어지면서 누구나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이는 일부 계층이 독점하고 있었던 정보를 모든 계층이 접근하여 공유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훈민정음 창제는 단순한 문자의 창제가 아니라 정보 유통
구조의 혁신을 가져온 엄청난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많은 역할을 했던 훈민정음의 창제 배경과 원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기 쉬운 사실이 있는데, 지금부터 훈민정음에 관련된 몇 가지 오해와 진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훈민정음은 글자만을 가리키지는 않아
세종대왕께서 새로 만드신 글자를 ‘훈민정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훈민정음’이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훈민정음’의 가치로 보아서는 당연히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하다고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글자도 ‘훈민정음’이지만 그 글자에 대한 해설을 담고 있는 책 또한 ‘훈민정음’이라고 한다. 그러면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문화유산은 둘 중에 어느 것인가?
전 세계에서 많은 언어가 사용되고 있고 여러 종류의 문자도 사용되고 있는데, 언어나 문자는 모두 각 민족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문화다. 각 민족이 독특하게 가지고 있는 문화는 서로 우열을 가리거나 비교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문화의 가장 근간이 되는 언어나 문자도 서로 우열을 가리거나 비교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따라서 문자로서의 ‘훈민정음’은 로마자나 한자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을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문자를 만들고 그 문자에 대한 해설서를 갖춘 경우는 훈민정음외에는 거의 없다. 유네스코에서도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훈민정음 해설서인 책자, <훈민정음 해례본>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한 것이다.







무엇을 위하여 만들어졌을까?
훈민정음은 서문에도 나와 있듯이 우리말을 제대로 적을 수 있는 문자가 필요하여 만들어졌다. 하지만 <훈민정음 해례본>에 있는 글자들을 살피다 보면 당시 우리말과 관계없는 소리를 적기 위한 글자들이 보인다. 그런가 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가지 소리를 적을 수 있다는 표현도 보인다. 또한 훈민정음을 창제할 당시는 각종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외국 문물이나 기술에 관심을 많이 가질 때이기도 했다. 이러한 점을 모두 고려하면 훈민정음은 대체로 아래와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우선, 무엇보다도 우리말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중국 한자음을 적기에 적합한 글자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중국 한자음을 발음기호처럼 적기 위한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훈민정음은 소리대로 적을 수 있는 표음문자로 만들어졌다. 표음문자는 소리대로 적을 수 있기 때문에 외국에서 들어온 말을 한자와 같은 표의 문자보다 훨씬 더 원 발음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훈민정음은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외국에서 들어온 각종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외국의 각종 서적들을 번역할 때에도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해설서 역시 훈민정음으로 적혀 있을까?
훈민정음 서문을 이야기할 때 ‘나랏말 미…’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새로 만든 글자를 설명하면서 그 설명문을 새로 만든 글자로 적는다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영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이 영어로만 된 참고서를 본다면 쉽게 영어를 배울 수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훈민정음도 새로 만들어진 글자였기 때문에 기존에 익숙했던 문자를 사용하여 설명해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 말하는 훈민정음 해설서는 한문으로 되어있고 서문은 ‘國之語音…’으로 시작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나랏말 미…’로 시작하는 책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한문으로 되어 있는 해례본 중에서 세종대왕께서 직접 쓰신 어제 서문과 새로 만든글자의 음과 운용 방법을 적은 예의 부분만을 훈민정음이라는 글자를 사용하여 우리말로 번역한 책이다. 이처럼 한문으로 된 내용을 훈민정음 등으로 풀어서 쓴 책을 ‘언해본’이라고 한다. 따라서 훈민정음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은 한문으로 적혀 있는 책이고, <훈민정음 언해본>은 훈민정음 해례본 원문 중 일부를 훈민정음을 사용하여 우리말로 풀어서 쓴 책이다.
 


- 글. 이승재. 국립한글박물관 연구교육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