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문화재라고 하면 우선 유물이나 유적 같은 구체적인 형상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면 사람을 통해 전해진 무형문화유산이야말로 전통문화 향유의 원천임을 깨닫게 된다.


무형문화유산은 유형문화유산의 모태
가장 쉽게 유형과 무형의 문화유산을 구별하는 방법이라면 유형은 카메라로 촬영하고, 무형은 캠코더로 촬영한다는 것 아닐까 싶다. 유형문화유산은 그 존재 기반이 물질이기 때문에 공간문화재인 반면, 무형문화재는 그 속성이 일정한 연속성을 가진 시간문화재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고려청자는 카메라로 촬영하면 그만이지만, 세계적인 성악곡으로 평가받는 판소리는 캠코더로 촬영하는 것이 옳다. 유형문화유산이 고정된 완성형인 데 반해서, 무형문화유산은 그것을 완성시켜가는 유동적 진행형이요, 일련의 과정적 행위 일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바꾸어 말하면 유형문화재는 역사를 간직한 물질적 유산이요, 무형문화재는 현재까지 전승되어오고 있는 지적 유산인 셈이다. 무형유산을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전통지식의 하나라 하겠다
그러나 모든 무형문화유산이 유형문화유산을 만드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유형문화재와 상관없이 독자성을 가지고 전승되기도 한다. 무형문화유산은 예능과 기능으로 나뉘는데, 예능은 예술, 제의, 놀이처럼 유형문화유산과는 상관없이 무형 그 자체로 전통을 지속시키는 것이요, 기능은 의식주를 위한 각종 생활재, 종교를 표상하는 신앙물, 그리고 각종 공예품, 건조물 등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만들어내는 것은 기능 그 자체가 아니다. 기능을 가진 사람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인간문화재 및 전승을 위한 교육과 활동이 필요한 영역
숭례문을 복원하면서 겪어야 했던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국보급 건축물을 재현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기능 보유자가 극히 소수였다는 점이다. 사리에는 벗어나지만 극언을 좀 하자 치면 그나마 작은 숭례문이 불탔기에 망정이지 궁실 등 대형 국보급 건축물이 화재나 천재지변으로 소실되었다면 어찌해야 했을지 오싹하기조차 하다.
우리나라 최고의 예술품으로 간주되는 백제금동대향로나 신라금관 등도 지금까지 그것을 만들 수 있는 기능이 고스란히 전승되고 있다면 수십, 수백 개라도 마음만 먹으면 금방 제작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기능이 사람에 의해 전승되고 실행된다는 데 있다. 유형문화재를 지정할 때는 그와 관련하여 따로 사람을 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무형문화재를 지정할 때는 특정 개인이든, 단체든, 또는 불특정 다수든 전승 주체의 인정이 필요하다.
이제는 법적 개념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인간문화재로 불리는 보유자는 전수교육과 전승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전수교육의 보조를 위해 전수교육조교를 둘 수 있으며, 이수생 중에서 우수한 사람을 선발한다. 전수교육조교는 해당 무형유산에 대해 일정한 전수 과정을 거친 이수자로서 이수증을 소지한 사람에 한한다. 또한 전수장학생 제도를 두어 장학금 등을 지급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2012년에 아리랑과 2013년에 김장문화를 유네스코에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하면서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따로 두지 않았다. 불특정 다수 또는 민족 단위의 보유집단을 인정하게 된 사례다. 이에 따라 새로 마련된 무형문화재법에서는 “해당 국가무형문화재의 특성상 보유자, 보유단체를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하여 따로 전승자를 지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변화는 두 가지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첫째는 무형문화재의 지정 대상이 보다 확대되고 용이해졌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소멸 위기에 있는 긴급보호 종목만 아니라 예의 아리랑이나 김장문화처럼 현재 활발히 전승되고 있는 무형유산에 대해서도 지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과 진행
유네스코는 1972년 세계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 등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국제규범을 제정한 바 있다. 그러나 무형문화유산 보호에 대해서는 구속력 있는 국가 간 규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여, 1989년 ‘전통문화 및 민속 보호에 관한 유네스코 권고’와 1997년 총회에서는 소멸 위기에 처한 무형유산 중 그 보존과 재생을 위하여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을 선정하여 보호하자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유네스코에서는 무형유산이 더 이상 소멸되는 것을 막고 무형유산을 확인하고 보호하며 증진할 목적으로 2001년 5월부터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등재 사업을 시작했으며, 선정 첫해인 2001년에는 19개 종목, 2003년에는 28개 종목, 2005년 에는 43개 종목으로 확대해갔다. 그러나 문화적 다양성의 원동력이자 지속가능한 발전의 보장 수단인 무형유산의 보호에 관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2003년 9월 29일부터 10월 17일까지 파리에서 개최된 제32차 유네스코 총회 마지막 날 ‘무형유산보호협약’을 채택했다. 한편 이 협약에 의거하여 유네스코에서 2001년부터 시행되어오던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제도는 2008년 제2차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세계 무형유산 대표목록 및 긴급보호목록’ 제도로 변경하기로 결의했다. 우리나라는 2005년 2월 9일, 11번째로 협약 당사국으로 가입하여 지금까지 협약 이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에 명시된 무형유산의 영역은 크게 5가지다. 1) 무형문화유산의 전달 수단인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과 표현물, 2) 공연 예술, 3)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 행사, 4)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과 관습, 5) 전통공예 기술 등이 그것이다. 유네스코의 이러한 영역은 올해부터 시행되는 우리나라 무형문화재법의 제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1년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제도가 마련되면서 우리나라는 가장 먼저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을 등재한 것을 시작으로, 판소리(2003), 강릉단오제(2005), 강강술래(2009), 남사당놀이(2009), 영산재(2009), 제주칠머리당영등굿(2009), 처용무(2009), 가곡(2010), 대목장(2010), 매사냥(2010, 13개국 공동), 택견(2011), 줄타기(2011), 한산모시짜기(2011), 아리랑(2012), 김치와 김장문화(2013), 농악(2014), 줄다리기(2015, 4개국 공동) 등을 지속적으로 등재시키고 있다.
무형유산의 가치에 대한 재인식과 문화재 정책의 재고
무형문화재는 유형문화재를 낳은 모태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민족공동체의 어려운 삶의 여건을 극복하고 대내외적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었던 지혜의 소산이기도 하다. 그러한 기능, 그러한 예능이 없었다고 가정해본다면 오늘날 우리의 삶은 물론, 민족의 삶 역시 온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무형유산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심각하다. 시골보다는 도시를, 지방보다는 중앙을, 동양보다는 서양을 경도하는 세태는 물론이요, 과거는 열등하고 현대는 우수하다는 프레임으로 무장한 장갑차보다 강한 집단적 인식이 우리 사회 속에 편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관심과 충실한 배려가 전제되지 않으면 곧 사라져버리는 것이 무형유산이다. 무형유산은 한번 사라지면 복원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더욱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문화재 정책은 유형문화재 중심이다. 이러한 사실을 방증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예산이다. 2010년 기준으로 유형문화재가 94.9%, 무형문화재가 5.1%였으니, 몇 년 지난 지금은 더 벌어져 있을 것이다
무형문화유산은 일정한 지리적·역사적·사회적 환경에 적응해온 우리 민족의 집단적인 삶의 지혜요, 소중한 자산이며, 더구나 재창조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무형문화유산의 보호를 위한 지정과 기예능 보유자의 인정과 지원에 다소 미흡했던 지금까지의 문화재 정책은 재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실제 무형문화재의 지정 건수와 전승 인력이 적은 편이지만, 더구나 전승교육과 전승활동에 충분한 지원이 이루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지정된 문화재라고 해도 전승자가 없어 지정이 취소된 예도 있다. 관심과 보호가 부실했던 까닭이다. 활발한 전승교육과 전승활동을 통해 지속가능한 문화유산으로 가꾸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지원이 부족했던 까닭에 자연도태의 길을 걷게 된 사례들이다.
민족공동체의 전통문화는 한 개인의 기억과 같이 소중하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온전한 인격체라고 할 수 없듯이, 전통문화를 괄시하거나 망실하면 정체성 역시 와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예능과 기능적 무형유산 역시 우리가 소중히 지켜가야 할 가치 있는 전통문화임에 틀림없다. 상대적 우위까지는 아닐지라도, 유형유산과의 형평성 논란에서 무형유산이 좀 자유로울 수 있도록 문화재 정책의 재고가 요망되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