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1. 풍농과 악귀 쫓기를 위해 기원하는 제의의 일부
2. 중국 귀주성 위녕현의 〈춰타이지( 한국의 〈하회별신굿탈놀이〉, 서낭신인 각시가 撮泰吉)〉 가면극, 무동을 탄 모습
3. 일본의 미야자키현(宮崎県) 시이바손(椎葉村)의 〈다케노에다오가구라(嶽之枝尾神楽)〉
4. 《봉사도》제7폭 모화관에서 행해진 중국사신 영접행사의 연희장면, 산대(왼쪽) 앞에서 연행된 줄타기, 물구나무서기, 접시 돌리기, 가면극 등의 전문적 연희
Ⅰ. 동아시아 가면극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현황
우리는 가면극을 탈춤, 탈놀이, 가면희 등으로 부르고, 일본에서는 가면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儺戱)라고 부르는데, 이는 중국 가면극들이 대부분 나례에서 연행되던 연희인 나희로부터 발전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한국·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자국의 무형문화유산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1954년부터, 한국은 1964년부터, 중국은 2006년부터 무형문화재를 국가 차원에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우리의 무형문화재에 해당하는 용어로 ‘비물질문화유산(非物質文化遺産)’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해당 분야의 기예능을 갖고 있는 사람을 ‘보유자’로 인정하는데, 이를 중국에서는 ‘전승인(傳承人)’, 일본에서는 ‘보지자(保持者)’라고 부른다.
중국은 이제 막 무형문화재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작했지만, 각 지역에서 자기들의 무형문화재를 국가 지정 ‘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열기는 매우 뜨겁다. 그리고 ‘비물질문화유산’과 관련된 행사나 학술 대회도 자주 개최하고 있다. 필자는 매년 중국의 가면극학회인 중국나 희학회의 학술대회에 참가하는데, 가면극이 전승되고 있는 지역들에서는 이 학회를 유치하여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현지 답사를 통해 자기 지역의 가면극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국가 지정의 무형문화재를 (1)중요무형문화재(연극, 음악, 공예기술 등)와 (2)중요무형민속문화재(의식주, 생업, 신앙, 연중행사 등에 관한 풍속관습, 민속예능)로 구분하여 지원한다. 그래서 연극 분야 중 노(能), 가부키(歌舞伎) 등은 (1)에 해당하고, 각 지방의 가구라(神樂)는 (2)의 민속예능에 해당한다. (1)은 전문적인 연희자들이 전승하는 종목으로서 그 기·예능을 보유한 사람과 단체를 모두 지정한다. 그러나 (2)는 단체만 지정하고 보유자는 지정하지 않는다. 이를 한국에 적용하면 판소리는 (1)중요무형문화재(음악)에, 가면극은 (2)중요무형민속문화재(민속예능)에 해당한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한국의 가면극들은 대부분 각 지방에서 세시풍속의 하나로서 마을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에서는 가면극 분야에 대해 보유자와 단체를 모두 지정하고 있으니, 일본보다 지원이 좋은 편이다.
중국은 비물질문화유산을 민간문학, 민간음악, 민간무용, 전통희극, 곡예, 잡기와 경기, 민간미술, 전통수공기예, 전통의약, 민속으로 분류하여 지정하고 있다. 중국 가면극인 나희는 전통희극 분야에 해당한다.
한국에는 현재 국가 지정의 중요무형문화재 가면극 13종목, 각 시도의 무형문화재 가면극 2종목(진주오광대와 퇴계원산대놀이)이 있다. 중국은 그동안 전통희극 분야에 430개 종목을 지정했는데, 여기에 나희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은 노(能)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중요무형민속문화재의 민속예능 분야에 35개의 가구라(神樂)를 지정했다. 이 가구라들은 대부분 민간의 가면극이다.

5. 중국 귀주성 덕강현의 무당들이 공연하는 가면극인 〈나당희(儺堂戱)〉
6. 춤사위가 매우 뛰어난 〈봉산탈춤〉의 팔먹중춤
7. 중국 안휘성 지주의 나희 〈유문룡〉. 가면 자체에 모자를 장식
Ⅱ. 동아시아 가면극의 역사와 계통
중국·한국·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가면극은 매우 유사한 발전 과정을 보인다. 동아시아에는 (1)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과 (2)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이 있었다. (1)은 각 지역의 향촌제사활동(鄕村祭祀活動)에서 연행되던 것으로서, 각각 자생적, 향토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2)는 산악(散樂) 또는 백희(百戱)라고 불리던 동아시아 공동의 연희들이 발전하여 성립된 것으로서,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함께 각국의 독자성을 띠고 있다.
1.마을 주민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은 하회별신굿탈놀이나 강릉관노가면극처럼 향촌제사활동인 마을굿에서 유래하여 발전해 온 가면극들로서, 그 지역의 주민들이 전승해 왔다. 이 가면극들은 다른 지방의 가면극과는 아주 다른 독자적 내용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 가면극들이 마을굿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도판 1)
중국의 나희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 왔지만, 후대에는 그것이 민간에 전파되어 각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도 전승되고 있다. 그리고 중국 한족을 비롯하여 소수민족들에는 여러 향촌제사활동에서 유래하여 그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어온 가면극들도 있다.(도판 2)
한편 일본의 고유 신앙을 섬기는 신사(神社)에서 신에게 바치는 공연예술인 가구라(神樂) 중에는 자생적인 민속가면극의 예를 보여 주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한국의 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지방마다 차이가 크며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도판 3)
2.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
한국의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은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생겨난 가면극이다. 본산대놀이는 삼국시대에 중국과 서역으로부터 유입된 산악·백희, 그리고 상고시대의 제천의식 등에서 연행되던 전문적 연희자들의 연희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발전해 형성된것이다. 산악·백희를 놀았던 사람들은 그 연희 내용으로 볼 때 삼국시대부터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연희자였으며, 이들의 후예가 통일신라시대에 최치원의 시 <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에 묘사된 다섯 가지 연희, 통일신라시대 이래 고려시대까지 계승된 팔관회와 연등회에서 연행된 가무백희,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계승된 나례에서 연행된 산대희 등을 놀았다. 그리고 중국 사신 영접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희를 펼치던 반인들이 18세기 전반기에 산악·백희 계통의 연희와 기존의 가면희들을 재창조해서 본산대놀이를 성립시켰다. 이 가면극은 애오개(아현), 사직골, 구파발, 녹번 등에 있었다.
최근에 발견된 《봉사도(奉使圖)》(1725년) 제7폭은 서울의 모화관 마당에서 행해진 중국 사신 영접행사의 연희 장면을 그린 것이다. 접시 돌리기, 땅재주, 줄타기, 탈춤을 묘사하고 있다. 마당의 오른쪽에는 산거(山車)·산붕(山棚)·윤거(輪車)·예산대(曳山臺)·예산붕(曳山棚) 등으로 불렀던 소규모의 산대가 보인다. 바로 이런 산대 앞에서 공연하던 연희들을 ‘산대희’라고 불렀다. 특히 세 명의 땅재주꾼 양 옆에서 각각 두 명씩 모두 네 사람이 초록색과 남색의 가면을 쓰고 탈춤을 추고 있다. 이는 서울에 전문적 연희자들이 연행하던 가면극이 있었고, 그 가면극을 애오개산대놀이 등 산대놀이라고 불렀던 이유를 전해준다.(도판 4)
본산대놀이의 영향 아래 경기도의 송파산대놀이·양주별산대놀이, 황해도의 봉산탈춤·강령탈춤·은율탈춤, 경남의 수영야류·동래야류·통영오광대·고성오광대·가산오광대, 남사당패의 덧뵈기 등이 생겨났다.
본산대놀이는 전문적 연희자들이 전승했지만, 여기에서 전파된 별산대 놀이, 해서탈춤, 야류와 오광대 등은 농민, 하급관속, 무부(巫夫) 등 각 지역의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중국에서는 가면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중국 가면의 역사에서 가면의 효시는 나례에 등장하던 방상시(方相氏) 가면이다. 이 나례에서 연행되던 각종 연희와 가면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가면극이 생겨났기 때문에 가면극을 나희라고 부른다. 다른 계통의 가면은 육조(六朝)시대 이후 산악·백희에 사용되던 것으로, 이는 서역악무(西域樂舞)의 영향을 받은 외래기원의 가면이다. 현재도 중국에는 귀주성의 나당희처럼 무당집단이 전승하고 있는 나희들이 여러 지역에 있는데, 이들은 전문적 연희자인 셈이다.(도판 5)
일본의 가면극은 귀족이나 무사 등 지배계급에 의해서 육성된 가면극과 서민층에 의해 육성된 가면극이 있다. 전자는 주로 전문적 연희자들에 의해 전승되어왔기 때문에 예술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데, 기가쿠(伎樂)·부가쿠(舞樂)·교도(行道)·노(能)·교겐(狂言)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가운데 노와 교겐은 특히 산악·백희와 밀접한 관련 아래 성립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동아시아 공동의 연희문화인 산악·백희가 일본에 유입된 이후 변화·발전하여, 후대에 일본의 대표적 전통연극인 노가쿠(能樂)·노쿄겐(能狂言)·닌교조루리(人形淨瑠璃)·가부키(歌舞伎) 등 전통연극을 성립시켰던 것으로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산악·백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이 연희를 발전시켜 ‘나희(儺戱)’라는 가면극을 성립시켰고, 일본에서는 사루가쿠(猿樂) 즉 산악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노(能)’라는 가면극을 성립시킨 것처럼, 한국에서도 중국 사신 영접 시에 나례도감에 동원되어 연희를 펼치던 반인(泮人)들이 ‘본산대놀이’를 성립시켰던 것이다.
Ⅲ. 동아시아 가면극의 연희 내용
한국의 가면극은 벽사적 의식무과장, 파계승과장, 양반과장, 영감할미과장 등 서로 다른 내용의 과장들로 짜여진, 소위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가면극을 탈춤이라고 부를 정도로 춤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춤사위가 매우 뛰어나다.(도판6) 일본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가구라도 여러 가지 내용으로 짜인 옴니버스 스타일의 구성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나희와 일본의 노는 대부분 하나의 가면극이 하나의 서사적 내용으로 짜여 있다.
이러한 서사성의 나희와 노도 또한 서로 차이점을 갖고 있는데, 노는 ‘현재노(現在能)’와 ‘몽환노(夢幻能)’가 있어 특징적이고, 나희는 주로 노래와 대사에 의해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현재노’는 현재형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노를 말한다. ‘몽환노’는 나그네(조연자인 와키가 분장)의 꿈 속에 망령이나 화신이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몽환노에서는 시간이 자유롭게 정지하고 역행하며 초자연적인 존재도 자유롭게 등장할 수가 있다. 주연자는 고전 속의 미녀이거나 역사상 인물일 수도 있고, 지옥의 원령이거나 신(神), 불(佛), 귀(鬼), 초목(草木)의 정령이기도 하다.
중국 나희에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 황제, 왕, 일반인물등 배역이 매우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연희 내용도 의식적인 춤을 제외하면 대부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를 연극화하여 공연한다. 이는 일본의 경우도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 가면극에서는 하늘의 신, 지하의 신, 산신, 귀신이 거의 없고, 황제나 왕 같은 존재는 등장하지 않으며, 일반 인물 위주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연희 내용도 기존 연극이나 설창, 고사 등에서 차용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주로 현실의 문제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한편 한·중·일의 가면 또한 각국의 특징을 갖고 있다. 한·중·일 가면의 형태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머리 윗부분에 있다. 한국 가면은 얼굴의 이마 부분까지만 표현하고 있다. 일부 머리카락을 표현하는 경우에도 간단한 선으로 나타내고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안면의 변화에 의해 나타낸다. 모자를 쓰는 배역은 별도의 모자를 착용한다. 예를 들어, 봉산탈춤의 귀면(鬼面)인 팔먹중가면을 보면, 오로지 안면의 표정에 의해 무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일본 노나 가구라의 가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의 가면은 대부분 머리 부분과 얼굴 부분을 모두 이용해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표현한다. 가면 자체에 머리 부분의 모자나 왕관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도판 7)
그리고 한·중·일의 음악적 선율과 장단이 서로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 음악에 맞춰 연기하고 춤을 추는 연희자들의 동작과 춤사위는 각국 가면극의 전통성과 독자성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