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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 현대인과 고전,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5-06-09 조회수 : 2594
현대인과 고전,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한 시대의 문화는 독자적으로 갑자기 형성되는 것이 아니고 생명체처럼 과거의 문화를 이어받아 서서히 생성되어 왕성한 모습을 보이다가, 차차 쇠퇴해져 또 다른 문화가 탄생되도록 유도한 다음에 서서히 소멸하는 것이 정상 발전이다. 그렇지 않고 어떤 외래문화를 모방하여 갑자기 열광하는 새 문화를 형성시키거나, 우리 전통문화를 지나치게 모습이 다른 이질적인 문화로 급히 개조해버리는 일은 문화의 정상 발전에 장애가 된다. 오늘날 혹시 지나친 상업성의 개입이 우리 문화발전에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지나 않는지 의심스러운 생각이 들 때가 간혹 있다.

현대사회 대중문화에서 고전문학 작품을 현대화하여 공연예술 자료로 많이 개작하고 있는 현실을 접하면서, 고전문학 작품은 한 시대에 문자로 정착되어 고정화되었다는 점에 유의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고전문학 작품은 그 형성된 시기의 특수성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현대인의 의식과 정서에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고전작품을 현대인에게 교육하거나 알리는 경우, 현대정서에 맞추려고 특정 장면을 끌어들이거나 쉽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개조하는 일은 삼갔으면 한다.

학교에서의 고전교재 선정에 관하여 논의해보고자 한다. 교과서에 실리는 고전작품은 보편적으로 정통 고전작품이라고 공인되어 있는 작품을 선정해 실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고전교육 방법은 한 시대에 출판으로 고정된 정통 고전작품과 후대에 변화된 작품을 비교해 가면서 교육하는 방법이다. 특히 여러 이본(異本)이 있는 고전소설의 경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학생들의 이해와 편의를 위하여 현대 표기로 바꾸는 것은 무방하지만, 풀어서 설명하거나 내용을 쉽게 고치는 일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과서에서 학습하는 고전문학 범위는 매우 다양하다. 시가(詩歌) 계열에서 볼 때 고시가(古詩歌)에서 향가(鄕歌), 고려가요(高麗歌謠)와 한림별곡(翰林別曲) 그리고 시조(時調)와 가사(歌辭)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교재로 선정되어야 한다. 이 점에 있어서 현재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검인정 교과서 제도에 의한 편향교육의 우려도 없지 않으니, 지도하는 교사는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민족고전으로서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할 작품을 고루 선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산문(散文) 계열에 있어서, 『춘향전』이나 『흥부전』, 『심청전』, 『토끼전』 등과 같은 판소리 계열 작품들은 두루 교재에 실려 있지만, 여러 종류의 검인정교과서 전체에 고루 실리지 못한 실정이다. 따라서 선정되는 교과서에 따라 매우 범위가 좁아질 우려가 없지 않으니, 지도교사의 비교교육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나아가 교재에는 긴 작품의 일부를 싣기 때문에 학생들로 하여금 소설 전체를 통독(通讀)하도록 지도했으면 한다. 만화책으로 또는 영화로 각색되어 오락성이 첨가된 내용을 흥미본위로 이해하면 고전을 올바르게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정이 허락한다면 교재에 실린 작품 외에도 여러 고전문학 작품 중에서 교사가 엄선하여 학생들에게 읽게 하도록 권하고 싶다. 우리나라 대표 고전작품을 제대로 읽지 않았을 때, 한 시대의 대중문화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우리 뿌리를 올곧게 반영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고전소설 중에서 현재 판소리로 구연(口演)되고 있는 네 작품은 그 내용이 널리 알려지는 데에 판소리의 영향을 크게 입었다. 19세기 초반에 활동한 학자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觀優戱)』(1834)에 의하면, 판소리로 구연되었던 사설은 열두 마당이다.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변강쇠타령·배비장타령·강릉매화타령·옹고집타령·장끼타령·왈자타령·가짜신선타령’ 등 이다. 그런데 후대의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서는 다시 판소리 열두 마당을 제시하면서 ‘왈자타령’과 ‘가짜신선타령’ 대신 ‘무숙이타령’과 ‘숙영낭자전’을 넣고 있어서, 합치면 열네 편이 되는 셈이다. 이 중에 현재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 다섯 편은 판소리로 구연되고 있고, ‘배비장·옹고집·장끼·숙영낭자’ 등 네 편은 고소설 전(傳)으로 구성되어 전하지만 판소리로서는 생명을 잃었으며, ‘강릉매화타령·왈자타령·가짜신선타령·무숙이타령’ 등 네 편은 그 사설마저 전하지 않는다. 그리고 ‘변강쇠타령’은 신재효(申在孝) 선생의 판소리 사설집에 그 내용이 전하지만, 표현의 선정성(煽情性) 때문에 공연을 꺼리는 실정이다.

19세기 중반 신재효 선생이 정리한 판소리 사설 여섯 바탕에서 ‘변강쇠가’를 제외한 다섯 바탕이 오늘날의 판소리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이 중 ‘적벽가’를 제외한 네 바탕 사설이 고소설로 발전되어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소설작품으로서 교재에 실리고 있다. 그런데 판본(板本) 소설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판소리 사설은 여러 명창의 바디 상호 간에 상당한 표현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동일한 작품이면서 서로 다르게 표현된 내용은 상호비교하면서 학습해야만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판소리계 소설이 아니면서 우리 민족 정서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소설로 『홍길동전』이 있다. 조선시대 후기 판본(板本)으로도 경판(京板)과 완판(完板), 안성판(安城板)까지 다양하게 간행되었고, 널리 애독되어 그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오늘날 중등학교 교재에도 실려 교육하고 있는데, 이 소설은 혁신 의지를 강하게 반영하고 있으면서도 결말에는 해외 영토 개척과 함께 이상향을 건설하려는 전향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 그리고 도적이면서 조정에 도움을 주고 관원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어서 시사(示唆)하는 바가 매우 큰 작품이다.
한 국가의 고전교육은 민족의 뿌리에 관계되어 있어서 소홀히 할 수 없다. 모든 국민의 의식 속에, 우리 고전이 마음 속 깊이 새겨지도록 공부하겠다는 정신자세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국가와 민족의 전통과 자존심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지키겠다는 의지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바이다.

 
- 글. 김현룡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