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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무형문화재 전승현장의 고민
지난 50년 동안 중요무형문화재의 발굴과 전승을 위한 전승자와 국가의 노력은 실로 대단했다. 1962년 1월 10일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이래 무형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각종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도시화·산업화의 격랑 속에 사라질 위기에 처한 우리 전통문화를 보호하는 데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무형문화재보호제도를 통한 보호 전승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형문화재 원형유지 원칙으로 인한 창조적 계승·발전 저해, 전통공예품의 사회적 수요 저하로 인한 공예기술의 전승단절 위기 고조, 사회 환경 변화로 인한 도제식 전수교육의 효용성 부족 등은 약방의 감초처럼 학문적 논의에서 제외된 적이 없었고, 국가와 전승자들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오랫동안 이 문제가 표류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해결책 마련이 쉽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특히 무형문화재제도가 보존과 전승에 치우쳐 오히려 문화의 창의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비판은 꾸준하다. 무형문화재제도가 보존과 전승을 강조한 나머지 지정 본래의 의도와 다르게 문화재의 박제화 현상을 낳고, 현대인들의 정서와 동떨어진 예술 활동이라는 우려였다. 이로 인하여 무형문화재의 재창조와 현대화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양립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몇 해 전 문화재청에서 중요무형문화재의 원형 유지와 변화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전승자들은 원형의 뼈대를 유지하는 선에서 변화가 가능한 부분은 개인적인 특성과 현대인들과의 정서적 공감과 대중화를 위하여 최소한의 변화에 대해 긍정적 답변을 내어 주었다.
무엇이 원형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논의를 차치하고라도 정책보다 무형문화재 현장의 전승자들이 사회 변화에 다소 빠르게 반응하게 된다는 점을 감안할때, 이러한 설문 결과는 무형문화재의 전승현장이 오늘날 사회변화와 수요를 빠르게 수용해 가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 준다.
무형문화재의 창의성
유형문화재는 실체가 있는 유형의 산물로써 얼마든지 원형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고 거부감도 없다. 또한, 유형문화재는 원형을 복원하는 일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임무이다. 그러나 무형의 예술과 공예기술은 문화 또는 예술이 담지하고 있는 역동성과 즉흥성, 현장성을 인정할 때 원형을 찾는 작업이 적합하지 않은 존재이다.무형문화재는 변화되어서는 안 되는 부분, 즉 반드시 전승해야 할 부분을 유지하되 그와는 별도로 무형문화유산으로서 현시대의 대중의 정서와 동떨어진 박제화 된 고전 예술이 아닌 현시대의 예술로서 함께 호흡 되는 전통예술로 발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해당 유산의 본질적 가치가 유지되는 범위 내에서 재창조와 현대화가 필요하다. 또한 변화된 시공간에 걸맞게 전수교육에서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
한편, 중요무형문화재 전승자와 국가의 전통이나 원형에 대한 개념과 범주가 모호하며 다르다는 점이다. 학문적 차원에서 논의할 수 있는 ‘전통’과 제도적 보호 아래에서 전승되는 무형문화재가 지니는 ‘전통’은 다른 차원에서 규정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검토 없이는 앞으로 전승자들의 창의적 예술 활동과 작품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지속될 우려가 있다.
세계가 주목하는 무형유산의 생명력과 전승공동체
유네스코〈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제정(2003)과 함께 무형문화재의 생명력과 창조적 계승이 주목받고 있다. 협약에서는 “공동체, 집단 및 기술뿐 아니라 이와 관련된 도구, 사물, 공예품 및 문화공간 모두”를 무형문화유산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무형문화유산이 공동체와 집단, 개인에 의해 끊임없이 생산 전승되는 속성을 지녔음을 중시하여 전승 주체의 중요성과 역할을 강조한다.
공동체는 그들이 보유한 무형문화유산을 발굴, 관리하는데 활발하게 참여해야 하며 이러한 유산을 창조, 재창조, 유지·전승하는 데 유일한 존재로 간주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하에 무형문화유산의 실행주체이자 보호의 주체인 공동체에 주목하여 이들의 참여와 노력을 진작시키기 위해 다양한 보호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 등재 제도’도 그 일환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협약에서 주목할 것은 공동체와 실연자가 유산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보호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미래의 보호조치를 위해 어떠한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하려 하는지다. 공동체의 노력이 해당 유산의 생명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우리의 무형문화유산은 그 전승공동체와의 긴밀한 연관 속에서 자연적으로 전승력을 확보해 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광복 이후의 대중예술의 도입과 산업화는 무형유산의 전승현장과의 맥락적 전승력을 잃게 만들었다. 탈맥락화 된 무형유산의 자연스러운 전승과 보호조치가 합리적으로 진행하기에 다소 한계가 있으나, 우선 공동체와 함께 무형문화재에 대한 현장 이해의 장을 마련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무형문화재의 미래, 사람과 문화에 대한 이해
앞으로 무형문화유산의 보전과 진흥의 원칙을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꾀하는 방향도 고려하는 한편, 전통 기술은 물론 현대적 디자인, 경영기법, 지식재산권 등에 관한 지식을 함께 학습함으로써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발전을 꾀해야 문화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또한, 무형문화유산의 브랜드화, 전통공예품 인증·은행제 도입, 전승자의 창업·제작·유통 지원, 해외 전시·공연 등 국제교류 지원, 지식재산권의 적극적 보호 등 무형문화유산의 사회적 수요를 진작시킬 수 있는 각종 진흥 정책을 마련함으로써 무형문화유산 전승자의 전승 의욕을 고취시키고, 전통문화의 자생력을 높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방향성은 지속 변화하는 문화의 본질과 사람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였을 때 실행 가능하며, 무형문화재 보호제도의 진정한 가치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 글˚황경순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