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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 역사 속 천문학 천상열차분야지도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4-10-06 조회수 : 9180
역사 속 천문학 천상열차분야지도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약 600년 전에 새겨진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그 후속작을 모두 볼 수 있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오래된 천문도이다. 권근(權近)의 도설에 따르면, “이 천문도는 옛날에 평양성에 있었는데 병란으로 인하여 강에 빠져 그 탁본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어떤 사람이 그 탁본을 하나 바치니, 태조가 돌에 새기라고 명하였다. 서운관의 건의에 따라 세차를 반영하여 중성기를 새로 계산한 다음 돌에 새겼다.”고 한다. 이 글에서 평양성이라 하였으므로 흔히 고구려를 연상하게 된다. 이 천문도를 연구했던 칼 루퍼스(Carl Rufus)도 1913년에 천문도의 원도는 고구려 때의 것이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나중에 효소왕 1년(692)에 승려 도증(道證)이 당나라에서 천문도를 가져왔듯이 그 고구려의 천문도도 당나라에서 하사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후 루퍼스의 글은 여러 학자의 논문과 동아시아 과학사 분야의 권위 있는 저술에 인용됨으로써 정설로 굳어져버렸다.
 

천상열차분야지도 숙종본의 탁본. 1395년 음력 12월에 제작했다고 적혀 있다. 가운데 동그란 원 안에 283자리 1,467개의 별을 새겼다. 원래 중국의 전통 별 개수는 1,464개이나, 천기(天紀) 한 별이 빠지고, 종대부(宗大夫) 네 별이 추가되었다. 성도는 중국 한나라 시대의 천문 지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 위에 있는 하늘 천(天)이 새겨진 둥근 것은 류방택(柳方澤)이 새로 계산한 중성기(中星紀)이다.<규장각 소장>
그러나 루퍼스 박사의 논문을 읽어보면 그의 결론은 권별(權鼈)의 『해동잡록(海東雜錄)』에 수록된 문구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데, 그 『해동잡록』의 원문에는 “여계(麗季)의 병란으로 인하여 강에 빠졌다.”라고 되어 있다. 이 구절은 권근의 도설에는 단지 “병란으로 인하여 강에 빠졌다.”라고 되어 있으니, 권별이 자기의 상식으로 판단하여 “여계(麗季)”라는 어구를 추가한 것이다. 계(季)는 어떤 역사 시기를 말기를 뜻한다. 문제는 여(麗)이다. 여당전쟁(麗唐戰爭)과 같이 이 글자가 고구려를 뜻하는 약자일까? 조선시대의 문헌에서 이 글자는 지극히 일반적으로 고려(高麗)를 뜻한다. 더군다나, 루퍼스와 동시대인 1934년에 출간된 『경성부사(京城府史)』에도 “이 천문도는 전 왕조인 고려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하였다.”고 소개되어 있다. 루퍼스의 학설을 객관적으로 재조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개도(蓋圖)로 분류된다. 천구의 북극으로부터 잰 별들의 각거리를 거극도라고 하는데, 원형 성도의 중심에 천구의 북극을 두고, 별의 위치는 극좌표계에서 반경을 거극도에 비례하도록 그리는 것이 개도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있는 동심원 세 개의 중심은 모두 한곳에서 만나니, 그 점이 바로 천구의 북극이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북극오성(北極五星)의 한 별인 천추성(天樞星)이 정확하게 놓여 있다. 지구의 자전축은 세차운동에 의해 방향이 변하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북극성도 변해왔다. 지금은 우리가 폴라리스라고 부르는 작은곰자리의 한 별이 그 자리에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인 한나라 무렵에는 천추성이 북극성이었다. 즉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북극성은 한나라 시대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입성육(立星六). 천상열차분야지도 태조본 석각(국보 제228호)에는 건성육(建星六) 대신에 입성육(立星六)이라고 새겨져 있다.이것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피휘한 것이다.


적도 근방에 놓여 있는 스물여덟 개 의 대표 별자리를 이십팔수라고 부 른다. 이 별자리들은 해와 달과 행성 들의 움직임을 표시할 때 기준이 되 는 별자리들로 서양의 황도 12궁에 견줄 수 있다. ‘이십팔수’ 각각에는 좌표의 기준점 노릇을 하는 수거성( 宿距星)이 있다. 최초의 수거성 관측 기록은 한나라 무제 때 것이다. 천상 열차분야지도의 도설에 수록되어 있 는 이십팔수 수거성의 좌푯값을 분 석해 보면, 기원전 ‘34년±170년’에 관측한 값으로 계산된다. 천상열차 분야지도의 성도가 그려진 방식을 알므로, 성도에 있는 수거성들이 동 심원의 중심으로부터 떨어진 거리를 자로 재서 그 별의 거극도로 환산할 수 있다. 그 좌표값을 분석한 결과,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들 은 서기 68년±400년에 측정한 값으로 나왔다. 돌에 새기면서 생긴 오차가 크긴 해도 이 수거성들은 한나라 때 관측된 것임을 뜻한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성도에는 안에서부터 각각 주극성 원, 천구의 적도, 전몰성 원 등 세 개의 동심원이 있다. 이 동심원의 상대적인 크기는 관측자의 위도에 따라 변한다. 주극성 원과 적도의 반지름을 이용해서 관측자의 위도를 구해보면, 약 38도가 나온다. 측정오 차와 제작오차를 감안하면 분명히 서울 또는 개성의 관측자가 본 하늘이란 뜻이다. 중국의 성도는 전통적으로 북위 35도에 맞춘다. 그 위도에 해당하는 중국 등봉(登封)이란 곳에 주공(周公)이 천문을 관측하던 측경대(測景臺)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도의 가장자 리에는 서울이나 개성에서는 관측할 수 없고 등봉에서는 관측되는 별들도 나온다. 따라서 천문도 제작자가 고려 또는 조선의 도읍에 맞추어 주극원과 적도의 반지름만을 조정한 것으로 판단된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맨 위에 있는 하늘 천(天) 자가 새겨진 작은 동그라미는 중성기(中星紀)이다. 이것은 24절기별로 저녁과 새벽에 남중하는 이십팔수 별자리를 열거한 표이다. 시간 측정을 점검하는 데 사용되는 표이다. 류방택(柳方澤)이 중성기를 다시 계산했다고 도설에 적혀 있다. 세종 때 편찬된 칠정산과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도설을 바탕으로 계산해 보면, 조선 초의 중성기임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원본이 고려시대 것이라는 굉장히 중요한 증거가 발견되었다. 바로 천문도의 성도에 입성(立星)이라고 적힌 별자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고려 태조 왕건의 휘(諱)인 건(建)을 기(忌)하여 뜻이 비슷한 글자인 입(立)으로 적어 놓은 것 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증거는 천상열차분야지도 석각의 모본이 고려시대의 것임을 지시하고 있다. 이로써 17세기 권별의 해동잡록 이나 경성부사의 서술이 근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의미는 동양 천문학의 정통인 한 무제 시대의 항성 관 측 결과를 가장 온전하게 담고 있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도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 글˚안상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