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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 조선의 악보 여행 : 합자보(合字譜)의 세계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4-03-03 조회수 : 5324
조선시대로 떠나는 음악여행 - 조선의 악보 여행 : 합자보(合字譜)의 세계

음악과 악보
음악은 소리로 이루어지므로 귀를 스쳐 가면 이내 허공으로 사라진다. 좋은 그림을 늘 곁에 두고 감상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 물론 그 선율이 마음 저 깊숙이 스며들어 오래도록 기억되기도 한다. 마음속 저장고에서 가끔 꺼내어 흥얼거릴 수는 있다. 그러나 그건 마음속의 음악일 뿐, 소리는 이미 흩어져 버린 후이다. 그 음악을 가두어 놓으려면 특정한 기호나 부호, 문자 등을 동원하여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리를 눈으로, 음으로 읽을 수 있도록 기록한 것이 곧 ‘악보(樂譜)’이다. 악보를 만들기 위해 일정한 규칙을 동원하여 기록한 약속체계를 ‘기보법(記譜法)’이라 한다. 기보법은 각 문화권이나 나라마다 다양하다. 음의 높이나 길이를 기록하는 방법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특정 법칙을 익혀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기보법은 일종의 ‘약속’인 기호 체계로 이루어져 있어 그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규칙을 터득하게 되면 악보에 갇혀 있는 것을 소리로, 음악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들리는 기록, 소리 낼 수 있는 기록이 곧 악보이다.

이처럼 음악은 소리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음악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필요성을 역설하거나 기록하기 위한 노력의 흔적은 여러 문헌에서 보인다. 15세기 조선의 음악학자로 유명한 성현(成俔, 1439-1504)은 그의 『악학궤범(樂學軌範)』에서 악보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역설하고 있다.
악보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다. 아무리 훌륭한 음악이라 하더라도 귀를 스쳐 지나가면 마치 형체가 사라져 그림자도 흩어지는 것처럼 이내 사라지고 만다. 그런 까닭에 악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수많은 악보가 만들어졌다. 국가적인 규모로 시행되거나, 국가의 주요 의례에 사용되는 음악을 기록하기 위한 악보들은 기록의 목적과 지향이 분명하므로 가장 상태가 좋은 악보로 남게 된다. 조선왕조실록에 포한된 『세종실록악보』나 『세조실록악보』는 현존하는 악보로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후의 『시용향악보』, 『대악후보』나 『속악원보』등 다양한 악보가 국가 주도로 만들어졌다. 민간에서도 『양금신보』, 『현금동문류기』, 『어은보』 등의 악보가 만들어졌는데, 이들은 모두 음악을 기록하기 위한 것으로 모두 음악 연주를 위한, 소리를 재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악보를 만들 때 소리 낼 수 있는 최대치의 기록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성현의 합자보
요즘엔 주변에 음악을 가르쳐 줄 선생이 많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좋은 선생을 찾아가 음악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전통 시대에는 사정이 좀 달랐다. 선생도 귀했고 선생을 만날 기회가 좀처럼 많지 않았다. 조선의 선비들은 거문고를 교양으로 익혔다. 이때 악기를 배우기 위해 선생을 찾아야 했다. 혹여 좋은 분을 만나 악기를 배웠다 하더라도 그것을 악보로 만들어 놓고 자주 접할 수 있게 된다면 음악 익히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악학궤범』의 저자 성현이 창안한 합자보(合字譜)라는 악보를 보면 그러한 마음이 잘 읽힌다. 선생이 곁에 없어도 악보가 친절하고 상세하게 연주법을 일러 주기 때문에 그 공백을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합자보(合字譜)의 기록 방식을 보자. 이는 글자 혹은 기호를 조합하여 만들었다. 거문고 줄 이름의 약자(略字)와 거문고 괘의
순서, 손가락을 표기하는 한문의 약어, 지법과 탄법, 즉 손가락을 짚는 법과 타는 법 등을 한꺼번에 합하여 기호를 모아 표기하는 악보이다. 나아가 거문고만이 아닌 가야금, 향비파, 당비파와 같은 현악기는 모두 합자보로 기보할 수 있다. 합자보를 읽는 방법을 설명한 기록을 보자. 『금합자보』에 나오는 ‘금합자보해(琴合字譜解)’의 기록이다.

합자보의 특징은 곁에 스승이 없어도, 또 타는 것을 보지 않아도 몇몇 기호를 이해하면 쉽게 악보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악보로서의 완성도가 매우 높다. 동양 최초의 유량악보로서 이미 세종 대(1419-1450 재위)에 창안된 정간보(井間譜)의 경우, 음의 높이나 길이는 표기할 수 있지만 특정 악기의 괘차, 지법, 탄법 등까지 기록할 수는 없다. 좁은 의미의 악보는 보통 음높이와 길이 정도를 표기할 수 있는 소극적인 악보이지만 합자보는 이처럼 악보로서 기록할 수 있는 최대치를 기록한 악보라는 점에서 매우 편리하고 유용하다. 관악기와 달리 현악기의 경우 오른손과 왼손의 기법이 나뉘어져 있고, 자세가 각기 다른 악기상의 특징으로 볼 때 이와 같은 기보법은 매우 합리적이다. 다만, 악보의 질서를 이해하기 위한 선행학습으로 몇 가지 기호의 약속을 터득해야 악보 읽기가 가능하다.

합자보의 악보를 읽어 보자. 좌측 그림의 합자보 첫째 간을 보면 ‘大’는 거문고 줄 가운데 ‘대현(大絃)’을 이르는 것이고 그 아래
의 숫자 ‘五’는 거문고의 괘 위치, 즉 대현 5괘를 이르는 것이다. 또 ‘대오(大五)’의 왼쪽에 있는 ‘L’자 는 긴 長 자의 아랫 부분의 표
기를 가져온 것으로 가운뎃손가락, 즉 ‘장지(長指)’로 줄을 짚으라는 기호이다. 바로 그 왼편의 ‘l’자는 거문고 구음의 ‘스랭’을 말
하는 것으로 술대로 문현(文絃)으로부터 대현(大絃)에 이르기까지 내려그으라는 뜻이다. 이처럼 합자보는 줄의 이름, 괘의 순서,
손가락, 지법, 탄법을 모두 표기할 수 있다. 이처럼 정간(井間) 한 간에 기록한 내용이 거문고 줄의 이름, 거문고 괘의 위치, 손을 짚는 위치와 손가락 사용법,그리고 오른손에 술대를 쥐고 줄을 긋는 법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기보법은 얼핏 복잡해 보이기도 하지만 몇 가지 기호만 익히면 매우 입체적이면서 이해하기 쉽고 편리하다.

합자보는 음악 전공이 아닌 사람이 음악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고, 배우기 위한 악보이며, 음악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악보이다. 비전문 음악인이지만 음악의 효용을 인식한 학인들에 의해 고안된 악보로서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합자보는 19세기까지 쓰이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합자보로 표기된 악보집인 『금합자보』(1572)의 만대엽 악보. 장악원의 첨정을 지낸 안상(安瑺)이 선조 5년(1572)에 편찬하였다. 편찬자의 이름을 따 『안상금보』라고도 한다.

- 글˚송지원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