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역사가 사실을 기록한다면 문학은 사람을 기록한다. 문학은 역사적 사실 하나만으로 기술될 수 없고, 문학의 영역으로 옮겨오면 역사적 사실은 더이상 역사적 산물, 역사적 상황, 역사가의 증언일 수 없다. 역사 자체와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문학은 역사적 사실 너머에서 진실성을 찾는다.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역사서도 모든 것을 기록하기보다 ‘선택적’으로 기록되며, 역사적 진실도 그 역사를 경험하고, 그 역사에 동참한 사람들의 의식, 감정, 사고, 환상 등을 떠나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문학은 말과 언어, 상상력을 통해, 사람의 겉과 속을 파고들어 사람의 내면적 갈등과 모순까지 다룬다. 있었던 사실을 정확히 기록한 역사서도 사실만 나열하는 것은 아니다. 기록물보관소(archive)는 과거의 기록만 보존하는 장소일 뿐 아니라 과거가 새롭게 재구성되는 곳이다. “예술적 회상이 저장으로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억과 망각을 부각시키면서 저장을 가상적으로 만들어낸다”는 알라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의 주장은 음미할 바가 많다.
불바다에서 호령하고 있을 때에도, 팽팽한 긴장 속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을 때에도 그리고 옥에서 풀려나와 폐허가 된 군진으로 돌아올 때마저도 그의 주변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함선을 만들고 수리하는 사람, 활을 만들고 화약을 만드는 사람, 적의 움직임을 알려오는 사람, 바닷물길을 가르쳐주는 사람, 둔전을 일으키고 고기를 잡고 소금을 구워 군량을 마련하는 사람…그는 언제나 사람들로 에워싸여 있었습니다.
- 신영복, 《나무야, 나무야》 중에서
신영복이 들려주는 이순신은 백성들과 동고동락하는 이순신으로서, 무엇보다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을 하늘처럼 받드는 존재였다. 우리는 지난 100년 전부터 문학적으로 이순신을 재현해왔다. 일기에서부터 야사, 소설, 한시, 시조, 현대시 등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는 다양하다. 신채호는 《리순신젼》(1908)에서 충실한 영웅 이순신을 찾아냈다. 한 나라의 역사는 ‘영웅’에 의해 움직인다는 신념적 이순신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불패의 존재였다. 세계적 영웅 넬슨보다 한 차원 더 높게 다뤄졌다. 반외세, 근대적 민족주의, 국권회복 의지를 주창한 작가 신채호의 역사관도 깃든 이순신이었다. 이광수는 《소설 이순신》(1931)을 통해 역사적 공적을 이룬 위인, ‘임란의 전공자로 숭앙’하기보다 변치 않는 ‘충의로운’ 이순신을 소개했다. 이순신의 절개·충의 등을 다루되 작가적 개입을 자제했다. 하지만 있는 것이 ‘어떻게’ 있는지를 보지 않고 ‘주어진 그대로’를 그리는 데 그쳤다. 비극적인 현실은 망각한 채 이순신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이 부족했다. 한편, 홍성원의 《달과 칼》(1993)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로서의 이순신을 발견했다. 유능한 지장(智將)으로서의 이순신이 아닌 전체적인 인격체로서 이순신이었다. 철저한 고증을 통해 이순신의 객관적인 입장이나 영웅적인 행동보다 개인적·실존적으로 고뇌하는 이순신을 보여줬다.
개인이 아닌 당대인 전체가 겪는 임진왜란과 고통받는 백성들과 함께하는 이순신, 그 고통을 함께 극복하는 운명공동체로서의 이순신을 재현했다. 일본 작가 오다 마코토의 《소설 임진왜란》(1992)에 등장하는 이순신은 구국의 영웅이었다. 코스모폴리턴적 사유에 뿌리를 둔 마코토는 임진왜란의 책임을 가해자인 일본이 마땅히 짊어져야 할 역사적 부채로 보았다. 그는 역사와 진실의 문제를 언어와 진실의 문제를 넘어 양심과 지성, 삶과 죽음, 과거와 지역적 경계를 뛰어넘는 미래의 문제로 보았다. 이런 이해의 지평에서 마코토는 이순신을 평가했다. 김훈의 《칼의 노래》(2001)에 나오는 이순신은 역사 속에 박제된 존재가 아니다. 김훈은 역사적 존재인 이순신과 현실적 존재인 자신을 변증법적으로 결합시켰다. 사실과 의견을 냉철하게 구분하는 공인으로서의 이순신을 칭송했다. 그 이순신은 비정하고 투철한 의지적 존재였다. 이순신의 심적 고뇌를 영혼의 살아 있는 원리로 형상화하려 했다. ‘인간 이순신’에 대한 복잡한 이해는 김탁환의 《불멸의 이순신》(2004)에서 다뤄졌다. 김탁환은 치밀한 구성과 방대한 자료로 작품화했다. 이순신을 알려면 실제 전장뿐 아니라 원거리에서 전장의 승패를 통제하고 공과를 논하는 조정 대신들, 그리고 선조 임금과의 관계까지 봐야 한다고 했다. 드러난 그대로의 역사보다 감추어져 있되 있을 법한 역사 속에서 명장 이순신의 신화 이면까지 파고들었다. 끝으로 이순신이 직접 말하는 이순신이다. 비극적인 현실을 보면서도 병법을 함부로 쓸 수 없는 상황 속의 이순신과 승전 후 초야에서 살겠다는 의로운 이순신이다.
북쪽에서 오는 소식이 아득하여 들을 길 없고 백발의 외로운 신하는 때 못 탄 것 한이로구나
소매 속에는 굳센 적을 꺾을 병법이 있건마는 가슴속엔 백성을 구제할 방책이 없네.
천지는 캄캄한데 갑옷에 서리 엉키고 변방의 바다에는 비린 피가 티끌 적시네
전쟁에 승리하면 말을 풀어 화양으로 돌려보낸 후 두건 쓰고 돌아와 은거하는 處士가 되리라.
- 이순신, <무제(無題)>
이순신에 관한 작품은 계속 출간 중이다. 새로운 문학적 해석이 속출하는 것은 이순신에 대한 평가가 종결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과거의 기록을 철저히 따지고 남김없이 짚는 일도 중요하지만 철저한 기록 복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역사적 기록을 철저히 복원함과 동시에 거기에 함축된 사람살이의 감정을 몰각하는 냉혈 인간들의 행위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들은 이를 존중하자는 얘기다. 과거의 기록마다 깃든 삶의 깊이와 고뇌를 되짚고, 이를 미루어 당시의 정황을 미래적 문제로 복원해야 할 때다. 문학적으로 재현된 이순신과 역사적 이순신과는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작품을 통해 창조되는 이순신은 우상이나 신으로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다. ‘살’과 ‘피’가 감도는 존재로서, 박제된 이순신이 아니다. 부하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말에 깃든 삶의 지혜를 읽는 사려 깊은 이순신이었다. 또한, 자작시까지 짓고 우국충정과 성찰적 삶을 살았던, 지극히 ‘인간적인’ 이순신이다. 삶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투철한 역사의식과 민족애, 군신과 임금과의 관계를 인식하면서도 불굴의 투지를 꺾지 않았던 이순신이다. 문학 속에 나타난 이순신은 위대한 인간 승리의 하나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순신이고, 이미 완성된 존재가 아닌 시대와 함께 ‘살아가는’ 미완성의 진행형 이순신인 것이다.
글˚최영호 (해군사관학교 초빙교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