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2013년 05월 - 신화와 문화적 상상력 위대한 생명의 본질, 사랑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3-12-12 조회수 : 4485

 

 

사랑은 인류사를 빛나게 하였던 문학과 예술의 불변의 주제 중의 하나다. 사랑은 인류사의 영원한 주제다. 그리스신화의 가장 매력적인 모티프도 역시 사랑이다. 그리스신화는 사랑이라고 하는 신성한 생명의 정감을 어떤 제한도 없이, 언제나 감각적이고 시적인 지혜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생명과 환락 그리고 자유의 본질로서의 사랑을 신과 신,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심지어 인간과 동물 사이의 사랑에 대한 묘사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사랑은 어떤 장벽도 뛰어넘는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힘을 가지고 있음을 그리스신화는 갖가지 형상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신화가 말하는 사랑의 첫 번째 본질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다. 쉽게 말하자면 성적인 욕구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주신 제우스의 사랑이 그 대표적이다. 아름다운 여인만 보면 그녀가 여신이든 인간 여인이든, 처녀든 유부녀든 가리지 않고 욕망에 사로잡힌다. 제우스의 욕정이 한 번 발동하면 그 어떤 대상도 피해갈 수 없다. 맘에 둔 여인을 차지하기 위해 주신으로서의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여러가지 형태로 변신한다.

 

소아시아의 공주 에우로페에게는 멋진 황소로 변신해 접근하였고, 얌전한 테베의 공주 안티오페에게는 사티로스로,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오스의 딸 다나에 에게는 황금 비로 변신해 욕망을 성취한다.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를 유혹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좋아하는 백조가 되었고, 정숙한 아내 알크메네 에게는 남편 암피트리온의 모습으로 다가갔다. 아프로디테는 그리스신화의 사랑의 여신, 그중에서도 육체적인 사랑의 여신이다. 이 여신은 단 하루도 육체적인 사랑 없이는 보내지 못한다. 그리고 이 여신의 유혹에 걸리면 신이든 인간이든 이 유혹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아프로디테가 가진 많은 별명 중의 하나인 ‘아프로디테 포르네’는 ‘음란한 아프로디테’라는 뜻이다. 이는 사랑의 본질이 성욕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스신화는 사랑의 여신에게 음란한 성욕을 부가시키는 것으로 몽롱한 면사에 덮인 사랑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신화는 애욕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어 여성의 아름다움이 중요한 격발 작용을 한다고 말한다. 이는 트로이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황금 사과에 얽힌 여신들 사이의 갈등에서 가장 잘 나타나고 있다. 신들이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혼례잔치에 모였을 때,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인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황금 사과 한 개를 던져놓고 사라져버린다.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그리스 여신에게”라는 말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자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세 여신이 서로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다툼이 일어났다. 그 누구도 세 여신 중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를 판정하는 책임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선택받지 못한 여신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제우스에 의해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심판관으로 선정되었다. 세 여신은 모두 파리스에게 자신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려주면 특별한 선물을 주겠다고 말한다. 아테나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지혜를, 헤라는 어마어마한 재물과 권력을, 아프로디테는 자신만큼 아름다운 아내와 짝을 지어주겠노라 약속한다. 파리스가 선택한 것은 아프로디테였다. 그리하여 파리스는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와 짝이 되지만 그의 조국 트로이는 전쟁의 불바다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스신화는 이처럼 성욕과 욕망이 본능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완전한 독립된 개체로서의 남녀 사이의 사랑이 단지 육체적인 욕구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님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사상과 정감, 영혼의 묵약(黙約)과 조화 등 이 오히려 성적인 욕망보다 사랑의 본질로서 더욱 중요하다고 그리스신화는 말한다. 이는 강의 요정 다프네에 대한 태양신 아폴론의 사랑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다프네는 이성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숲 속을 돌아다니며 동무들과 놀거나 들짐승을 쫓아다니는 일에만 열중할 뿐 도무지 남성을 눈여겨보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 결혼이니 사랑이니 부부 생활이니 하는 것은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 에로스의 화살을 맞은 아폴론이 다프네를 보는 순간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그러나 다프네는 한사코 도망치기에 바빴다. 에로스가 자신을 놀린 아폴론에게 복수하기 위해 아폴론에게는 황금 화살을, 다프네에게는 납 화살을 쏘았기 때문이다. 에로스의 황금 화살은 신이나 인간을 막론하고 처음 보는 이성을 미친 듯이 사랑하는 열병을 앓게 만들고, 반대로 납으로 된 화살은 누구든 처음 보는 이성을 넌더리 치며 혐오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과거와 현재를 알아보고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아폴론이었지만 자신의 사랑 앞에는 한낮 평범하고 무력한 존재가 되고 만다. 도망치던 다프네는 결국 한 그루 월계수로 변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폴론은 나무가 된 다프네를 여전히 사랑했다. 그리고 월계수 가지를 다프네의 사지인 듯 끌어안고 말한다. “내 아내가 될 수 없게 된 그대여, 대신 내 나무가 되었구나. 내 머리, 내 수금, 내 화살통에 그대의 가지가 꽂히리라. 기나긴 개선 행렬이 지나갈 때, 백성들이 소리 높여 개선의 노래를 부를 때, 그대는 승리자들과 함께할 것이다. 그뿐인가? 이날 이때까지 한 번도 잘라본 적 없는, 지금도 싱싱하고 앞으로도 싱싱할 터인 내 머리카락처럼, 그대의 잎으로 만들어 승리자들의 머리에 씌워줄 월계관 또한 시들지 않으리라.”(이윤기, 2000)


비록 일방적인 짝사랑이었지만, 아폴론은 그 사랑을 영원토록 간직하기 위한 맹세를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신으로서의 위엄이나 권위는 사라져버렸다. 오로지 잃어버린 사랑을 갈구하는 가련한 모습만이 부각되고 있다. 사랑이 가진 가장 원시적이고 자연적이며 순결한 힘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 인류의 내심에 자리한 가장 질박하고 신성한 정서에서 발원한 것이자 단순한 성애를 초월하는 것이며, 더 이상 욕구의 추구가 아니라 오로지 정서적 집착이라는 것을, 그리고 또 사랑은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것임을 그리스 신화는 아폴론의 맹세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

 

아폴론의 다프네에 대한 짝사랑 외에도 오르페우스의 에우리디케에 대한 헌신적 사랑이나, 에로스의 프시케에 대한 불변의 사랑 역시 지고지순한 가치로서의 사랑의 본질을 상징하는 것들 이다. 오르페우스는 독사에 물려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아 지옥까지 내려가 가까스로 아내를 구했으나, 하계의 왕국을 떠나기 전에는 아내를 보지 말라는 계시를 어긴 탓으로 에우리디케는 다시 지옥으로 떨어지고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 이후 오르페우스는 리라를 벗 삼아 들판을 헤매고 다니며 아무리 예쁜 여자가 유혹해도 거들떠보지 아니했기 때문에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광신도들에게 육체가 찢기는 죽임을 당한다. 에로스는 자신의 화살에 맞아서 프시케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프시케의 의심하는 마음 때문에 사랑을 버리고 떠난다. 그러나 두 연인의 지극한 사랑을 이해한 제우스에 의해 서로 맺어진다.


결국 그리스신화는 사랑의 본질이 육체적 욕망에서 발원하는 본능적이고 원시적인 비이성적인 힘이며, 만약 이러한 본질을 무시하거나 잃어버리게 되면 만족과 희열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이는 생명과 자유에 대한 찬송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본능적 요소가 절제될 수 있어야 비로소 삶이 건강해지고 진정한 생명의 본질과 자유를 체득할 수 있음도 함께 강조하고 있다. 제우스의 정신 부인이자 신성한 결혼의 수호 여신인 헤라가 정식으로 결혼도 하지 않고 은밀하게 교제하는 남자와 여자에게는 모진 벌을 주거나 지아비 제우스의 애인들에게 더할 수 없이 잔인한 형벌을 내리는 것은 신성한 결혼이 당연히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스신화의 이러한 사랑에 대한 이중적 관념은 사랑의 여신이자 애욕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탄생에 얽힌 일화에서도 여실하게 나타난다. 그녀는 세월의 신이자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에 의해 잘린 우라노스의 성기에서 일어난 물거품에서 태어났다. 때문에 아프로디테를 ‘물거품에서 태어난 여신’으로 불렀다. 이는 육체적 욕망이 사랑의 근원이지만, 아울러 세월을 초월할 수 있는 숭고한 힘도 가졌고 동시에 물거품처럼 덧없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글˚선정규 (고려대학교 중국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