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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참 만남 인터뷰
글·사진. 이종원(서울신문 선임기자)
‘천천히’ 살고 ‘느리게’ 작업하며 전통을 잇다
산이 많고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나무의 종류도 다양하고, 나무마다 아름다운 결을 갖고 있다. 예부터 이 땅의 장인들은 천혜의 자연미를 한껏 살리 고자, 인공을 최소화하는 미덕을 보였다. 이처럼 한국적 미가 가득한 가구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소목장(小木匠)이다. 특히 전통가 구가 주는 촉감과 다듬어 놓은 목재가 주는 따뜻함이 좋아서 소목장을 업으로 삼고 있다는 양석중 작가를 만났다.
정직한 나무들의 지휘자가 되어
강화대교를 건너 전등사 방향으로 가다 보면 한적한 시골 마을에 ‘와우목
공방(蝸牛木工房)’이란 건물이 보인다. 국가무형문화재 소목장 이수자인
양석중 작가의 작업실이다. 10년 이상 자연 건조된 30여 종의 목재들이 수
종과 연도별로 쌓여있는 창고가 눈길을 끈다. 바로 옆 건물로 들어가니 나
무를 다루는 수백 개의 연장이 시야를 압도하며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
다. 대패, 망치, 톱, 끌 등 종류와 개수를 헤아릴 수 없지만, 나름대로 서열
을 지키며 자리 잡고 있는 듯했다.
질서정연한 창고와 작업실은 “쓰임에 따라 적합한 목재를 구별하고, 필요
에 따른 도구를 손쉽
게 찾기 위해서”라
며 “목재를 뜻하는
‘재(材)’자가 쓰인 ‘적
재적소’라는 말이 인
사(人事)에 주로 쓰
이지만 목공예도 어
떤 나무와 연장을 사
용하느냐에 따라 결
과물이 천차만별 달
라진다”고 그는 설명했다.
작가는 ‘목재와의 소통’이 목재를 선택하는 기준이라고 했다. 나무의 습성
을 이해하면서 의사소통을 해야만 ‘나무들의 지휘자’가 될 수 있다는 게 그
의 지론이다. “사람들 사이의 일은 변수가 많은데, 나무는 결과가 정직하
다”고 말했다. “억지를 부려 나무를 자르고 다듬으면 가구가 된 뒤 결국 뒤
틀리고 갈라지기 마련”이라며 “내 욕심에 가까이하기보다는 나무가 가지
고 있는 개성을 이해하고 맞추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수명이 오래가는
느티나무, 가볍고 습기방지가 뛰어난 오동나무, 단단한 밤나무, 변형이 작
아 가구의 기둥재로 적합한 참죽나무 등 용도에 따라 그 쓰임새는 제각각
이기 때문이란다.
적재적소에 만난 ‘나무는 내 운명’
작가는 운동권 출신 늦깎이 목수다. 어느덧 나무 만지는 일을 업으로 삼은
지 20여 년이 됐지만, 한때는 노동운동을 하고, 대기업을 다닌 평범한 직장
인이었다가 명예퇴직을 한 서른일곱에 홀연 목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목수가 된 이유도 그에겐 ‘적재적소’였다. 직업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사회나 남들에게도 도움이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할 일
을 찾아봤다. 그때 ‘나무’가 나타났다. 어느 날 앉았던 찻집의 나무탁자가
주는 편안함이 좋았다. 나무의 덕성이 눈을 사로잡았다.
처음엔 전통한옥 장인들 틈에 끼어서 문짝을 만드는 일부터 했다. 그러다
가 가구로 방향을 틀었다. 2013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박명배
선생 문하에 들어가면서 솜씨가 늘었다. 나무를 베어서 말리고 다듬는 과
정을 지켜보면서 가구 만들기란 짜 맞춤뿐 아니라 쓰임과 공간도 재어보
아야 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작가는 20여 년 동안 짜임기법을 이용한 전통가구를 만들면서
‘현재의 쓰임새’를 중요시한다. “가구는 용도에 걸맞은 공간이어야 한다”
며 “가구를 놓는 집과 가구에 담는 물건이 변한 만큼 가구도 변해야 한
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프랑스 디자인특성화도시인 생테티엔의 디자인비엔날레에
서 ‘찬탁(饌卓)’과 ‘와인선반’을 선보였는데 전통기법을 활용한 현대주거환
경에 맞는 가구로 찬사를 받았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두 작품 이외에 2013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삼층장’을 비롯하여 2017년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 작
품전에서 국립무형유산원장상을 받은 ‘강화반닫이’가 있다. 한눈팔지 않
고 톱과 대패를 잡아 온 그만의 ‘나무철학’이 안겨준 쾌거다. 강화반닫이
는 섬세하고 치밀한 세공으로 조선시대 왕실용으로 쓰인 가구다. 그가 재
생시킨 강화반닫이는 작년에 태풍 ‘링링’이 왔을 때 벼락을 맞고 쓰러진 강
화도 연미정(燕尾亭)의 상징이었던 500살 먹은 느티나무를 재료로 활용
한 일종의 ‘재능기부’다. 당시 느티나무는 연미정이 다치지 않게 옆으로 쓰
러졌는데 이를 두고 주민들은 느티나무가 안간힘을 써 그리됐다고 칭송했
다. 느티나무의 갸륵함을 기려 양석중 작가는 강화반닫이로 재생시킨 것
이다.
전통문화 계승의 진정성을 추구하다
작가는 국가무형문화재로 대표되는 전통문화의 계승자가 점점 줄어드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소목의 경우 무엇보다도 만지는 재료인 원목의 나
뭇결이 제각기 다른 까닭에 붕어빵처럼 찍어낼 수가 없는 것이다. 합판을
사용해 단시간에 대중적 취향으로 뽑아내는 공산품과는 대량생산경쟁이
안 된다. 그렇다고 가격을 낮춰서 수요를 맞출 수도 없는 일이다. 대부분
수작업의 소량생산이므로 가격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생계
와 이어지기 마련이다. 전시회 또한 주문 제작 틈틈이 창작품을 만들어야
하므로 힘에 부친다.
그는 “전통문화의 계승을 시장에만 맡기면 존립이 어려워지고 원형을 찾
아보기 어렵게 된다”며 “값이 비싼 전통아교로 접착한 나무와 저렴한 공업
용 본드의 차이는 물론이고 시간이 절약되는 인공건조를 하면 자연건조만
큼의 효과를 볼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양석중 작가는 “전통은 옛 장인이 지녔던 철학”이라며 “전통문화 종사자
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나 사회가 지원안을 고민해주길 바란
다”며 말을 맺었다.
‘천천히 살고 느리게 작업하기 위한’ 와우목공방의 이름처럼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작업은 달팽이의 느린 속도로 시장의 효율성보다는 진정성을 쫓
아서 간다면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닿기도 한다고 했다. 양석중 작
가의 더 높은 비약을 기대해 본다.
- 글·사진. 이종원(서울신문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