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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5
왕릉으로의 여행
글 · 사진. 유성문(여행작가)
왕릉으로의 여행
왕릉으로의 여행은 ‘숲’으로의 여행이다. 그래서 당연히 ‘숨’의 여행이기도 하다. 조선왕릉의 뛰어난 조경자(造景者)들은 주검이 누워있는 능원을 생명의 숨결 이 가득한 숲으로 설계해놓았다. 그 숲은 죽음을 장식하는 숲이기에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엄숙하고 정연한 기품으로 그 숲을 찾는 이의 숨까지 살려놓는다. 왕릉으로의 여행은 ‘이야기’로의 여행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되 대신 숲의 숨결로 한 생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생애는 그냥 생애가 아니라서 그 이야기 는 한 시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왕릉을 거닐 때 숲은 나직이 역사를 이야기하고, 길은 소슬하게 사색으로 열린다. 그 ‘숨’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01_세종대왕릉 영릉
02_동구릉_건원릉
태조, 고향 함흥의 억새를 덮고 누우니
태조 이성계는 양주 검암산 일원을 자신과 후손들의 능지(陵地)로 정하
고 돌아오는 길에 고갯마루에 이르러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뒤돌아보니
거기 자신의 ‘신후지지(身後之地)’가 아늑히 펼쳐졌다. “이제 근심을 잊
을 수 있겠다!” 그래서 그 고개를 ‘망우(忘憂) 고개’라 했다. 비록 야사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지금의 구리시 동구릉으로 가는 길은 그 길을 되짚어
가는 길이 된다. 다만 현재의 망우동 고개는 새로 낸 길이고, 조선시대에
는 지금의 북부간선도로 신내동에서 구리시로 넘어가는 길목이었다.
동구릉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부터 문조의 수릉까지 총 9개의 능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 규모가 1,969,675㎡(59만여 평)에 달해 명실공히 조선왕
조 최대의 왕가의 무덤군을 이룬다. 동구릉의 중심 능은 당연히 건원릉이
다. 동구릉 깊숙이 들어앉은 건원릉은 우선 규모가 넉넉하고 앞이 시원스
레 트여 대범하면서도 편안하고 아늑한 기분을 안겨준다. 3면의 곡장 안
에 안치된 봉분은 가을이 되면 억새로 뒤덮이는데 생전 유독 고향을 그리
워했던 태조를 위해 억새가 지천이던 향리 함흥 땅에서 옮겨 입힌 것이란
다. 고향의 풀을 덮고 누웠으니 신후에라도 진정 망우에 들었을지.
동구릉이 특히 사랑스러운 것은 드넓은 숲에서 능과 능 사이를 이어주는
오솔길을 거닐 수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가 주류를 이루는 그 숲길은 사계
절 내내 청신하고 아름답다. 나들목에서 목릉에 이르는 동안 예쁘게 휘어
진 길 위로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들이 터널을 이룬다. 그 나무들이 뿜어내
는 숨결에 몸을 맡기고 걷는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지난 5월,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코로나로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그동안 제
한되었던 9개 조선왕릉의 숲길을 한시적으로 개방하면서 동구릉 내 경릉
과 휘릉 사이 때죽나무 숲길을 처음 선보여 감동을 안겨주기도 했다.
동구릉 가까이 남양주의 홍유릉은 조선왕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고종
(홍릉)과 순종(유릉)의 능이 있는 곳이다. 이를테면 8km(20리) 남짓 어
간에 조선왕조의 처음과 끝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동구릉에서
홍유릉으로 이르는 길은 조선왕조 500년의 시간여행이 된다. 홍유릉은
대한제국 선포 이후 2대를 끝으로 멸망하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남북한 모두에 공화정이 들어섰기 때문에 한국사에서 마지막으로 조성된 왕릉이
며, 대한제국이 황제국을 표방한 까닭으로 유일한 황제릉이기도 하다. 능
제(陵制)도 명나라 황제릉을 본받아 조성한 탓에 어쩐지 낯선 데다 망국
의 한이라도 서린 듯 스산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서오릉, 궁중여인네들의 한 많은 삶
서울 서북쪽과 경계를 이루는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의 서오릉을 필두로
서삼릉과 고려공양왕릉, 월산대군묘, 공순영릉 같은 크고 작은 음택들과,
용미리 언덕바지에는 지천으로 누워있는 백성들의 묘가 즐비하다. 벽제
화장장을 비롯해 속속 들어선 공원묘원들 역시 가루로라도 망자의 세상
을 거든다. 그 기점이 되는 서오릉은 총면적 1,829,792㎡(55만여 평)에
5능(陵) 2원(園) 1묘(墓)가 들어서 있는 동구릉에 버금가는 조선왕릉 능원
이다. 서울 구산동사거리에서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인 데다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인근 주민들이 아침저녁 산책코스로 즐겨 찾는 곳
이기도 하다.
서오릉에서는 특히 조선 궁중여인네들의 한 많은 삶을 만난다. 사도세자
의 어머니인 영빈이씨가 누워있는 수경원이 그러하고, 손자인 연산군의
학정을 나무라다 그의 머리에 받혀 죽은 소혜왕후가 잠든 경릉이 그러하
고, 장희빈에 밀려 폐위되었다가 천신만고 끝에 다시 복위되었으나 35세
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고만 인현왕후가 묻혀있는 명릉 또한 그러하다.
저마다의 사연은 고스란히 역사 뒤안의 처연한 스토리이지만, 그중 가장
압권은 아무래도 장희빈이 묻혀있는 대빈묘(大嬪墓)다.
남성중심사회에서 남성을 통해 신분상승을 이루었으나, 다시 남성에 의
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만 한 여인의 주검은 애초 광주군의 산야에 버려
진 듯 묻혀있다가 1970년이 되어서야 서오릉으로 이장되었다. 말이 이장
이지 그녀의 무덤은 왕릉의 본역을 구획하는 울타리 경계선에 초라하고
옹색한 몰골로(다른 능역에 비하면) 겨우 달라붙어 있는 형국이다. 더구
나 그녀가 누운 곳의 반대편 명릉에는 그녀의 지아비였던 숙종과 라이벌
이던 인현왕후가 나란히 누워있고, 그 한쪽에 제2계비였던 인원왕후의
능침마저 자리하고 있으니 멀찍이 그를 지켜보아야만 하는 폐빈의 심기
는 과연 어떠할까. 그렇게 해서라도(아들 경종이 묻혀있는 의릉 곁이 아
니라) 연을 잇게 해준 후인들의 처사를 잘했다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서오릉에서 서삼릉과 공양왕릉을 돌아 낙타고개를 넘어가면 새로 뚫린
길 밑에 어렵사리 버티고 있는 월산대군묘를 만난다. 묘 앞에서는 얼핏 한
기의 무덤으로 보이나 봉분 뒤편을 돌아들면 놀랍게도 앞에서는 보이지
않던 또 다른 무덤이 나지막이 숨어있다. 월산대군의 부인 박씨의 무덤이
다. 월산대군은 정략에 의해 동생 성종에게 왕위를 내준 뒤 은둔생활로 여
생을 마쳐야 했지만, 정작 더 큰 치욕은 사후에 벌어진다. 성종의 뒤를 이
어 왕위에 오른 연산군이 홀로 살던 부인 박씨를 범하여 끝내 자결에 이르
게 했던 것이다. 월산대군의 묘는 특이하게도 북향을 하고 있으니 어쩌면
궁궐을 마주하기조차 싫었던 까닭일 것이며, 자신의 무덤 뒤로 부인의 무
덤을 감춰두고 있는 것도 지어미의 치욕을 안간힘으로 막아서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망자의 ‘원(怨)’이 아니라 망자를 바라보는 산 자의
‘원(願)’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조선왕릉문화제, ‘신의 정원’을 거닐다
조선왕릉 40기는 지난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
었다. 이후 세계유산 조선왕릉의 가치를 지키고 완전성과 진정성을 높이
기 위해 훼손·변형되었던 조선왕릉의 능제 복원과 역사문화환경 회복을
위해 힘써온 문화재청은 2019년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10주년을 맞아
문화제와 학술대회를 열었다.
2020년 조선왕릉문화제는 10월 16일에서 10월 25일까지 구리 동구릉, 고
양 서오릉, 서울 선정릉, 여주 세종대왕릉 일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코로
나 사태로 인해 유동적이긴 하지만, 혹여 문화제가 열리지 못한다고 해도
왕릉이 개방만 된다면 답답한 숨통도 트일 겸 왕릉 산책에 나서보자. 물론
‘2m 이상 거리 두기’, ‘숲길 내 일방통행’, ‘마스크 착용’ 등 방역수칙은 꼭
준수하면서.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지난 5월 ‘초록빛 자연이 건네는 위로! 신의 정원
을 거닐다’를 슬로건으로 대국민 힐링 제공을 위한 ‘조선왕릉 숲길 9선 개
방’ 행사를 갖기도 했지만, 코로나 같은 위기국면에서 숲이 있는 조선왕릉
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그것은 ‘신의 정원’ 조선왕릉이 남긴 특별한 문화
유산이기도 하다.
03_홍유릉 석물
04_서오릉_대빈묘
05_서오릉_익릉
06_선릉 정자각
07_월산대군묘의 문인석
- 글. 안태욱(한국문화재재단 미래전략기획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