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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국악계 은어(隱語) 풀어보기
근현대에 들어서서 전통음악은 서양음악의 유입과 일제강점기 음악 교육, 그리고 일본식 유행가요의 범람 등으로 뒤흔들려 버렸다. 하지만 우리의 전통음악을 계승해 오던 음악인들은 나름대로 자구책을 마련해 당시 사회의 변화에 순응하며 창극이라든지, 산조와 같은 새로운 예술들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또한 조선구파배우조합(朝鮮舊派俳優組合)과 같은 단체를 결성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기도 했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신들끼리 통하는 은어를 일상 용어와 혼용해 사용함으로써 자신들의 조직을 보호하고, 결속력을 더 높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박헌봉과 국악인, 국악계 은어 조사
소리와 모양을 딴 ‘악기’의 은어들
전통음악 ‘예인’에 관한 은어들
기생은 ‘생째’ ‘째상’이라고 했는데, 기생의 생자에 사람에게 쓰는 째를 붙여 ‘생째’라 하고, 이를 뒤집어 ‘째상’이라고 부른 것으로 이해된다. 소 리꾼을 ‘맴이꾼’이라고 부른 것은 소리를 내는 매미에 사람을 뜻하는 꾼 을 붙여 맴이꾼이라 부른 것인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지 지금으로서 는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다. 악사를 ‘인고’ ‘비재군’이라고 부른 것은 악 기를 연주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고인(鼓人)을 뒤집은 말이며, 광대를 뜻하는 재인(才人)으로부터 파생된 잽이, 즉 재비를 뒤집고, 사람을 뜻하는 군을 붙여 비재군이라 부른 것으로 파악된다.
제자를 부를 때 ‘정갱이짬’이라고 한다는데, 아랫다리 앞쪽 부분을 뜻하 는 정강이와 짬이 결합돼 아마도 아랫사람을 뜻하는 의미에서 예술을 전수받는 제자로서 의미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국악계의 은어는 세습무계의 은어와 큰 차이가 없음이 검토된 바 있는 데, 소리꾼들의 소리와 무속인들의 소리를 서로 다르게 부르는 것이 흥 미롭다.② 박헌봉은 소리를 ‘혜덕’ ‘폐기’라고 부른다고 했는데, 무속인들 의 소리는 ‘어정’이라고 한다. 폐기는 패기라고도 하는데, 가야금산조 명 인이었던 김윤덕은 판소리와 단골네 굿하는 소리와 다르다고 했으며, 명고수 김명환은 박초월 명창 앞에서 정정렬 춘향가의 “그 때에 향단이” 하는 소리대목 성음이 어정 성음에 가깝다고 비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③ 판소리는 패기 성음이며, 남도지역 육자배기 무가의 성음이 어정 성음인 것이다. 패기와 어정은 아마도 소리를 부르는 스타일과 관련된 말에서 나온 듯싶다.
박헌봉 이후 국악계에서 사용한 언어를 전문적으로 추적한 학자들은 그 리 많지 않다. 하지만 은어는 집단의 언어이기 때문에, 우리의 예인 집단 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집단의 은어를 계속 찾아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 은어들로 우리 음악 속 깊숙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과 같이 학교 교육을 통해 전통음악인을 양성하는 시대에는 국 악인들이 만들어서 그들 사이에서 전승되던 은어는 점차 전통음악인들 사이에서 사라져 가고, 교육 현장에서도 더 이상 주목하지 않는 사어(死 語)가 되어가고 있다.
① 박헌봉은 “국악계 은어”를 1966년 『駱山語文』 창간호에 처음 발표했다. 본고에서는 朴憲鳳, ““國樂界 隱語,” 『月刊 文化財』(서울: 月刊文化財社, 1971), 11月 創刊號, 40-43쪽 재수록된 것을 인용했음.
② 김창일, “세습무 은어와 예인집단 은어의 비교 연구,” 『민속학 연구』(서울: 국립민속박물관, 2010), 제호.
③ 이보형, “창우집단의 광대소리 연구”, 『한국전통음악 논구』(서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0). 105-7쪽.
- 글. 이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