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백제왕도 사비도성의 원형을 찾아서
한국문화재재단이 백제시대 마지막 수도인 사비도성 발굴조사를 진행한 지 올해로 10년이 된다. 2010년 소규모 발굴조 사를 재단에서 전담하기 시작한 때부터 해마다 빠짐없이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2010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부여 지역에서 실시된 소규모 조사는 표본과 시굴 및 발굴 등 모두 285건이며, 전체 소규모 지원 건수 2,588건 대비 11%를 차지해 신라 도읍인 경주 다음으로 많다.
적외선 촬영본 (하단 1번 내용 참조)
사비도성 소규모 발굴조사에서 나온 주요 유물들
쌍북리에서 발굴한 주요 유물들
한편 쌍북리 201-4번지의 상층에서는 사비기 후기의 도성 내 도 시구획과 관련된 흔적을 나타내는 도랑(구溝)들이 동-서와 남-북 으로 조사됐는데, 이 구 안에서 문자가 적힌 목간과 칼 모양의 목 기 등이 출토됐다.
2013년도에는 사비도성의 외곽에 쌓은 동나성의 두 번째 문으로 추정되는 청산 아래 동이문(東二門) 바깥에서 나성 안으로 통행 했던 도로가 정동리 506-2,3번지 유적에서 상하 3개 층으로 조사 됐다. 그것도 백제시대 도로의 특징인 측구를 가진 완벽한 형태 의 도로여서 학술적인 중요성이 커 발굴 이후 문화재위원회 심의 를 거쳐 현지에 그대로 원형 보존됐다.
1.
쌍북리 328-2번지 구구단 목간(2011년 발굴).
우리나라 최고의 구구표로, 역사학과 고고학뿐만 아니라, 수학이나 과학 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소장처: 국립부여박물관
2.
쌍북리 325-3번지 상층 집수시설 조사 후(2019년).
발굴조사가 2019년에는 쌍북리 325번지와 325-3번지 및 325-6번지 등에서 진행되면서 북나성
구간의 웅진기 생활유구(원형수혈유구) 외에도 건축(굴립주건물지) 유구가 추가로 드러나게 되어
보다 다양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3.
쌍북리에서 출토된 백제시대 벼루.
7세기 청자벼루와 흙으로 만든 벼루.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소규모 발굴조사와 조사 성과로 백제왕도 원형복원 추진
2014년에는 사비도성 내부 추정 왕궁지의 서쪽에 위치한 구교리 367번지에서 1동2실의 특수건물지와 함께 8각 건물지의 흔적이 확인됐다. 그 하부에서 부분적으로 확인된 팔각건물지 또한 나라 의 기원과 관련된 중요 시설로 생각되는데, 8각 구조물은 고구려 탑과 백제와 신라 어정(御井)의 평면각과 동일하다. 특히 어정은 국가 초기의 시조 관련 제사시설인데 신라의 나정은 왕궁 기준 방 향성 등에서 공통점이 많다. 이 유적에서는 북조~초당 시기에 중 국에서 유행한 녹유가 매우 얇게 발려 투명한 녹색을 띠는 작은 벼 루가 출토됐다.
2015~2017년 동안은 부여에서의 발굴조사가 상대적으로 줄어들 었는데 발굴조사 방법 및 절차 등에 관한 규정의 제4조 유예기준 에 소규모 발굴조사가 포함됨에 따라 가능해진 결과다.
2018~2019년에는 지금까지 아주 부분적으로만 확인되던 사비 기 이전, 즉 웅진기의 유구와 유물이 새로운 관심의 대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백제고도문화재단에 의한 사비나성 북나성구 간(청산 포함) 발굴조사 과정에서 나성 하부에 웅진기 유물이 출 토되는 수혈유구가 확인되면서 사비기 이전 웅진기에도 부여지 역에서 유적이 존재했다는 보고가 있은 이후 청산 남쪽 사면부에 대한 소규모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그 실체가 좀 더 명확해지 기 시작했다. 즉, 쌍북리 325번지와 325-3번지 및 325-6번지 등 에서 발굴조사가 진행되면서 북나성 구간의 웅진기 생활유구(원 형수혈유구) 외에도 건축유구(국립주건물지)가 추가로 확인되는 등 보다 다양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과들은 머지않아 이루어질 백제왕도 사비도성의 원형 복원 및 실체 규명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초자료가 될 것 이며, 앞으로 그와 같은 주체적인 역할을 우리 재단이 계속해서 수행해 나갈 것임은 당연한 사실이다.
- 글. 사진.정훈진.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재조사연구단, 조사연구2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