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올해부터 무형문화유산만을 대상으로 한 법률이 시행됨에 따라 폭넓은
전수교육과 활용 방안 마련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여 사라질 위기에 처한 기·예능 122종을 종목으로 지정하고 보호한 지 50여년의 세월이 지났다. 이 기간에 문화재청의 정책기조 또한 ‘원형 보존’에서 ‘전승 활용’으로 바뀌고, 2012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에 따라 기존 제도를 정비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국내외 문화재 환경의 변화에 따라 문화재청은 2013년 국립무형유산원을 신설하여 무형문화재의 조사와 연구 및 기록의 아카이브 기능을 강화하였고, 2015년 3월 27일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신법’으로 약칭함)을 제정하였으며, 지난 1년간 무형문화재 관리 제도의 효율성을 확보하고 진흥정책을 통해 전승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을 다듬어 왔다.
이처럼 올해 3월 28일부터 시행될 신법에서는 무형문화유산의 ‘전승 활용’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무형문화유산의 전수교육과 활용방안 등을 제안해보기로 하겠다.
도제식 전수교육의 제도적 개선
문화재보호법이 시행된 50여 년간 우리의 무형문화재는 인간문화재라 불리는 보유자를 인정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예능을 1:1 맞춤형 도제식 교육으로 전승시켜왔다. 전수장학생을 선발하고 그들에게 3~5년간 교육을 시켜 이수자가 된 후 5년이 지나 전수교육조교를 선발하는 전승 시스템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보유자, 전수교육조교, 이수자, 전수장학생으로 이어지는 전수체계는 유네스코에 의해 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무형문화재 제도로 평가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보유자의 도제식 전승은 종목의 사유화, 가족 중심의 폐쇄적 전승구조로 인한 세습화, 제도권 교육과 유리된 채 보유자의 권력화 등을 야기했다는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또한 도제식 교육은 젊은 인재들이 선호하는 방식이 아니어서 신법이 제안한 전수교육대학을 단계별, 수준별로 접근해 보자.
첫째, 4년제 전수교육대학은 코어대학, 거점대학, 특성화대학 등을 제안한다. 문화재청 산하의 한국전통문화대학교가 중핵으로 위치하되, 특정한 한 곳만으로 독점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이것은 기존에 보유자가 전권을 행사하던 도제식 교육의 폐해를 고스란히 대학으로 옮기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코어대학과 함께 지역거점대학 및 특성화대학 등을 동시에 운영하여 상호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는 소규모 전공 학과 설치, 교육편제 재편, 보유자[전수교육조교]의 교수요원으로의 재배치 등 탄력있게 운영하는 것이다. 거점대학은 무형문화재 종목이 많이 소재한 지역을 권역별로 나누어 호남권역, 영남권역, 충청권역, 경기권역, 서울권 등에서 2~3곳을 선정하는 것이다. 특히 사라질 위기에 처한 긴급한 1~2종목만 집중해서 가르치되, 기운영되는 학점인증제를 특성화 대학과 연계시켜 지속적으로 확장되게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신법 통과와 함께 급하게 성과를 내기 위해 전수교육대학을 급하게 선정하기보다 교육환경이나 수요자의 변화를 읽어내고 타당성 조사를 거쳐 시간을 갖고 문제점을 충분히 고민해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하고 연차적으로 접근하되, 무형유산이 위치한 지역 연고를 융합하는 방안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예산은 기존 예산에서 편성된 보유자의 전승교육금을 교수인건 비로 전용 가능하고, 실습시설은 전수교육관이나 전수교육 관련 항목으로 편성되며, 미래인재의 장학금은 전수장학금을 우선 배정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도 있다. 전수교육대학을 선정하는 기준을 실질적이고 효율적으로 마련하여 보유자나 전수교육조교 등의 교수요원 확보율, 무형문화유산 교육과정의 운영방안, 기예능 관련 실습시설과 기자재의 확보 등을 다각적으로 평가하여 선정하되, 선정 이후 매년 교육성과 보고서를 받고 3년 내에 성과에 미달되면 탈락이나 교체 등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할 것이다.

둘째, 무형문화재의 학점인증제를 적극 활용하여 2년제 전수교육전문대학으로 제도화하길 제안한다. 무형문화재 교육을 학점으로 인정하고 2년제 전수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문화재청 산하 전통문화교육원의 문화재수리기능자 과정을 연계하거나 재편하는 방안이다. 교육원은 수리기능자 과정 7종목과 현장위탁과정 7종목은 기초과정 1년과 심화과정 1년, 총2년에 연간 48시수로 실기 위주의 교육이 진행되고 있어 무형문화재 전수교육 전문대학으로서 자격요건이 충분하다. 이곳의 시설이나 설비를 구비하고 있으며,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나 시도무형문화재 보유자 및 문화재수리기술자 등이 교수요원으로 참여하고, 교육과정이나 교수요목도 갖춰져 있다. 따라서 현재 대학을 졸업한 일반인의 문화재수리기능자 과정에 더하여, 사라질 위기에 처한 긴급 국가무형문화재 등 전수교육 프로그램을 2년간 집중적으로 교육한다면 전문대학의 기능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더불어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1995년부터 전통공예건축학교를 개설하여 침선, 자수, 매듭, 누비, 소목, 전통창호, 각자, 장석, 입사, 옻칠, 나전칠기, 단청, 대목 등 15개 종목을 32주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이 종목을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나 시도무형문화재 보유자 및 전수교육조교 등이 실기 교육을 하고 있어, 이것을 학점으로 인정하고 교육 수료 후 거점대학이나 특성화대학 등에 연계하면 제도권 교육에서 전수교육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중학생의 자유학기제를 통해 무형문화재와 연계시키는 ‘미래 인재교육’을 제안한다. 올해부터 중학생들은 1학기동안 자유학기제를 실시하는데, 무형문화재에 관심 있는 차세대 인재를 발탁하고 그들이 유산원에서 무형문화유산을 직접 체험하게 하거나, 특정 지역에 다수의 인재에게는 젊은 이수자들이 찾아가는 서비스를 해주도록 하는 것이다. 기능이든 예능이든 어린 시절에 익히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12년부터 문화예술교육사 제도를 실시하여 초중등학교 방과 후 학습 등에 미술, 공예, 연극, 사진, 애니메이션 등을 국가예산으로 학교 현장에서 가르치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반면교사 삼을 만하다.
전승자의 체계적 관리와 전시 개선
국가무형문화재의 전승체제는 신법에서도 전수장학생, 이수자, 전수교육조교, 보유자를 유지하게 되면, 이들을 국가는 철저하게 관리하고 창조적 전승을 유도해야 한다. 국가 예산으로 전수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이 3~5년간 언제 어디서 어떤 내용을 교육받는지 여부를 일지에 꼼꼼하게 기록하고 사진으로 도 남겨 분기별이나 연간 제출하고 문화재청은 이를 확인하고 정리해야 한다. 이들이 전과정을 이수하면 이수자의 해당 기예능 습득 여부를 문화재청의 주도하에 전문가 3인을 선정하여 이수 여부를 심의하여야 한다. 이수하고 5년 이후 2인의 이수자를 대상으로 전수교육조교를 선정할 때에도 전통 기능의 전과정을 면밀하게 심의하고 관리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선, 전수장학생의 재료나 도구를 국가에서 마련해주는 방안이다. 현재 도제식 교육환경에서는 보유자의 개인 공방에서 교육받는 날에는 작업이 가능하지만, 공방에 가지 않는 날에는 자기만의 도구와 재료가 없어서 집에서 스스로 연습해볼 수 없다. 예전에 제자가 모든 것을 다 배우고 나서 자립할 때 스승이 제자에게 작업에 필요한 모든 도구를 내어줘 독립하도록 해준 경험을 오늘에 되살리는 것이다. 전수장학생이 되었을 때 ‘장학증’과 함께 ‘도구사용증’을 주고, 재료는 매년 제공해주며 중간에 해지되면 도구를 회수하되, 기예능을 이수했을 때 ‘이수증’과 함께 ‘도구영구사용증’을 전달하는 세리머니를 거행해주는 것이다.
다음 자기 작업공간이 없는 이수자나 전수교육조교에게 작업공간을 국가가 지원하는 ‘무형유산 레지던시’나 ‘미래 보유자 디딤돌 사업’을 제안한다. 차세대 미래 보유자들에게 1년 혹은 2-3년간의 작업 계획서를 받은 후 국립무형문화유산원이나 전통문화교육원 등의 작업공간을 일정 기간 지원하고 교육사업까지 지원하는 방안이다. 작업공간을 매일 8시간씩 개방하면서 전과정을 작업하고, 그곳을 방문하는 초중학생을 가르치며, 나머지 시간에는 자신의 작업을 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때 재료와 도구 및 시설 운영비를 지원하고, 매년 연말에 1년간 제작한 전승공예품으로 전시를 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국가의 지원을 받아 1년간 전승자들이 작업한 작품 중 1~2작품은 국가에 기증하도록 기증하도록 한다.
이수자를 중심으로 ‘전승자 워크숍’을 항례적으로 진행하는 사업도 지속한다. 이수자들이 기예능과 함께 전수교육조교나 보유자로 성장하기 위해 교육기법이나 전시기획 및 행정적 능력을 증진시킬 프로그램을 강구해야 한다. 젊고 참신한 전승자들이 자신의 작업세계를 구축하고 전승교육에도 기여하게 하며, 그들이 국가에 기증한 작품으로 아카이브를 구축하면 보유자 위주로 기증받는 작품으로 아카이브를 구축하던 기존 방향성도 새롭게 모색할 있을 것이다.
한편, 모든 전승자들의 전승공예품의 제작 출품 및 전시를 의무화해야 한다. 재료와 도구 및 공방의 지원을 받은 전승체계 내의 모든 전승자가 해당된다. 보유자들은 인간문화재전에, 전수장학생부터 전수교육조교는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등에 매년 작품을 출품하도록 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 전승공예품과 창작공예품으로 이원화하여 전자는 비경쟁으로, 후자는 경쟁으로 평가를 받게 하는 등 다변화된 운영방안을 고안해야 한다. 보유자보다 전수교육조교나 이수자 등 보다 젊고 활동력 강한 신진들에게 문호를 개방 확대하고 그들을 활용한 전시 방안을 강화해야 한다.
더욱이 전승자들이 자존감을 가지고 활동할 프로그램을 늘리거나 ‘상박하후上薄下厚’ 지원체제로 확대되어야 한다. 비경쟁 부문의 출품은 전통 재료와 수공기술로 전통적인 공예품을 제작하도록 하되, 경쟁 부문은 첨단 재료를 도입하거나 새로운 IT 기술과 접목하거나 현대 창작공예나 디자인과 협업하는 등 전통과 현대를 아우른 다양한 통섭과 융합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이다. 전승공예가 지금처럼 과거에 안주하는 복고주의를 경계하고, 21세기의 새로운 문화 창조를 선도하도록 해야 한다.

전승공예품의 활성화 방안
오늘날 무형문화재는 원형 보존보다 전승 활용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이미 2014년에 문화재청은 조달청과 MOU를 체결하였고, 전승공예품을 나라장터를 통해 국가의 선물이나 상품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온라인 홍보를 위한 관리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나라장터나 온라인 장터에서 전승공예품을 판매하거나 홍보하는 사업은 보유자처럼 나이가 많고 소량의 고가 공예품을 제작하는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렵다. 따라서 젊은 전승자들에 문호를 넓히고 창의적 도전이 가능하도록 ‘씨앗 자금’을 지원하고, 고가의 첨단장비를 공동으로 사용하게 하며, 포장이나 인증을 위한 법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신법에서는 무형문화재의 보급 선양과 국민들의 전통문화예술 향유기회를 전담할 기구로 ‘한국무형문화재진흥센터’를 신설하는데, 조직과 예산을 확충하여 무형유산 진흥정책이 실질적으로 운영되고 실효성 있는 성과를 내도록 해야 한다. 우선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를 비롯한 전승자가 제작한 전승공예품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증대되는 추세이므로 그들이 제작한 ‘전승공예품 인증제’를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작자와 재료 그리고 전승 기술과 형태와 문양 등 제작과정을 QR코드로 증명하여 명료하게 구축하고 소비자가 믿고 구입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대장금 등으로 촉발된 K-드라마를 통해 위상이 높아진 우리의 전승공예품을 체계적으로 구입하여 해외 문화원 등에 대여하고 현지의 전시를 할 수 있도록 ‘전승공예품 은행제’ 또한 마찬가지이다.
또 차세대 미래 전승자들이 자생력을 확보하고 관광자원화를 도모하는 것도 활성화의 하나의 방편이다. 이를 위해 무형문화유산 전승자들의 창업을 지원하고, 그들의 작품을 브랜브랜드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동안 문화재청은 보유자들에게 매달 전승지원금을 지원하는 데 집중해왔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모든 것이 부족하고 가난한 시기에는 작은 지원금이 필요했다. 하지만 2015년 현재 보유자나 전수자를 비롯한 우리의 무형문화재 관련자들의 의식은 이전과 달라졌다. 작은 돈보다는 국가는 차세대 미래 보유자들에게 어떤 보유자상을 원하는지 큰 그림을 그려주어야 하고, 그들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관심과 배려가 더 필요한 시점인 듯하다.
이와 더불어 전승공예품의 국제교류전에 적극 참여하도록 지원하고, 전승공예품의 해외 판로개척 및 지원 또한 마찬가지이다. 국가는 젊은 차세대 전승 인재들이 해외의 선진 흐름을 읽고 창작의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소규모의 해외 기술 연수를 정례화하고 장기 해외 연수 등도 시도하여 무형유산이 창조산업으로 발전하고 활용되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살아있는 인간에 의해 전승되는 무형문화유산 또한 살아있는 생명체여서 끊임없이 주위 환경이나 여건에 의해 변화하고 발전되어 왔다. 50년 전 무형문화재를 조사할 당시 이미 전통시대의 재료나 도구 및 기술과 달라지고 현대식으로 변했음에도, 그동안 문화재보호법은 마치 인디언보호법처럼 ‘원형 보호’라는 도그마에 갇혀 시대흐름을 외면하고 보유자나 전승자들을 지정 당시의 원형에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이제 2016년 신법이 제정 반포되면서 기존의 원형유지에서 벗어나 전통의 토대 위에 21세기 아이디어와 창작까지도 모두 통섭하는 방향으로 무형문화유산가 보다 발전적으로 전승되고 활성화되길 기대해본다.
우리나라 최고의 예술품으로 간주되는 백제금동대향로나 신라금관 등도 지금까지 그것을 만들 수 있는 기능이 고스란히 전승되고 있다면 수십, 수백 개라도 마음만 먹으면 금방 제작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기능이 사람에 의해 전승되고 실행된다는 데 있다. 유형문화재를 지정할 때는 그와 관련하여 따로 사람을 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무형문화재를 지정할 때는 특정 개인이든, 단체든, 또는 불특정 다수든 전승 주체의 인정이 필요하다.
이제는 법적 개념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인간문화재로 불리는 보유자는 전수교육과 전승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전수교육의 보조를 위해 전수교육조교를 둘 수 있으며, 이수생 중에서 우수한 사람을 선발한다. 전수교육조교는 해당 무형유산에 대해 일정한 전수 과정을 거친 이수자로서 이수증을 소지한 사람에 한한다. 또한 전수장학생 제도를 두어 장학금 등을 지급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2012년에 아리랑과 2013년에 김장문화를 유네스코에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하면서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따로 두지 않았다. 불특정 다수 또는 민족 단위의 보유집단을 인정하게 된 사례다. 이에 따라 새로 마련된 무형문화재법에서는 “해당 국가무형문화재의 특성상 보유자, 보유단체를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하여 따로 전승자를 지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변화는 두 가지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첫째는 무형문화재의 지정 대상이 보다 확대되고 용이해졌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소멸 위기에 있는 긴급보호 종목만 아니라 예의 아리랑이나 김장문화처럼 현재 활발히 전승되고 있는 무형유산에 대해서도 지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과 진행
유네스코는 1972년 세계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 등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국제규범을 제정한 바 있다. 그러나 무형문화유산 보호에 대해서는 구속력 있는 국가 간 규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여, 1989년 ‘전통문화 및 민속 보호에 관한 유네스코 권고’와 1997년 총회에서는 소멸 위기에 처한 무형유산 중 그 보존과 재생을 위하여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을 선정하여 보호하자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유네스코에서는 무형유산이 더 이상 소멸되는 것을 막고 무형유산을 확인하고 보호하며 증진할 목적으로 2001년 5월부터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등재 사업을 시작했으며, 선정 첫해인 2001년에는 19개 종목, 2003년에는 28개 종목, 2005년 에는 43개 종목으로 확대해갔다. 그러나 문화적 다양성의 원동력이자 지속가능한 발전의 보장 수단인 무형유산의 보호에 관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2003년 9월 29일부터 10월 17일까지 파리에서 개최된 제32차 유네스코 총회 마지막 날 ‘무형유산보호협약’을 채택했다. 한편 이 협약에 의거하여 유네스코에서 2001년부터 시행되어오던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제도는 2008년 제2차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세계 무형유산 대표목록 및 긴급보호목록’ 제도로 변경하기로 결의했다. 우리나라는 2005년 2월 9일, 11번째로 협약 당사국으로 가입하여 지금까지 협약 이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에 명시된 무형유산의 영역은 크게 5가지다. 1) 무형문화유산의 전달 수단인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과 표현물, 2) 공연 예술, 3) 사회적 관습, 의례, 축제 행사, 4)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과 관습, 5) 전통공예 기술 등이 그것이다. 유네스코의 이러한 영역은 올해부터 시행되는 우리나라 무형문화재법의 제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1년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제도가 마련되면서 우리나라는 가장 먼저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을 등재한 것을 시작으로, 판소리(2003), 강릉단오제(2005), 강강술래(2009), 남사당놀이(2009), 영산재(2009), 제주칠머리당영등굿(2009), 처용무(2009), 가곡(2010), 대목장(2010), 매사냥(2010, 13개국 공동), 택견(2011), 줄타기(2011), 한산모시짜기(2011), 아리랑(2012), 김치와 김장문화(2013), 농악(2014), 줄다리기(2015, 4개국 공동) 등을 지속적으로 등재시키고 있다.
무형유산의 가치에 대한 재인식과 문화재 정책의 재고
무형문화재는 유형문화재를 낳은 모태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민족공동체의 어려운 삶의 여건을 극복하고 대내외적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었던 지혜의 소산이기도 하다. 그러한 기능, 그러한 예능이 없었다고 가정해본다면 오늘날 우리의 삶은 물론, 민족의 삶 역시 온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무형유산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심각하다. 시골보다는 도시를, 지방보다는 중앙을, 동양보다는 서양을 경도하는 세태는 물론이요, 과거는 열등하고 현대는 우수하다는 프레임으로 무장한 장갑차보다 강한 집단적 인식이 우리 사회 속에 편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관심과 충실한 배려가 전제되지 않으면 곧 사라져버리는 것이 무형유산이다. 무형유산은 한번 사라지면 복원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더욱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문화재 정책은 유형문화재 중심이다. 이러한 사실을 방증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예산이다. 2010년 기준으로 유형문화재가 94.9%, 무형문화재가 5.1%였으니, 몇 년 지난 지금은 더 벌어져 있을 것이다
무형문화유산은 일정한 지리적·역사적·사회적 환경에 적응해온 우리 민족의 집단적인 삶의 지혜요, 소중한 자산이며, 더구나 재창조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무형문화유산의 보호를 위한 지정과 기예능 보유자의 인정과 지원에 다소 미흡했던 지금까지의 문화재 정책은 재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실제 무형문화재의 지정 건수와 전승 인력이 적은 편이지만, 더구나 전승교육과 전승활동에 충분한 지원이 이루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지정된 문화재라고 해도 전승자가 없어 지정이 취소된 예도 있다. 관심과 보호가 부실했던 까닭이다. 활발한 전승교육과 전승활동을 통해 지속가능한 문화유산으로 가꾸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지원이 부족했던 까닭에 자연도태의 길을 걷게 된 사례들이다.
민족공동체의 전통문화는 한 개인의 기억과 같이 소중하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온전한 인격체라고 할 수 없듯이, 전통문화를 괄시하거나 망실하면 정체성 역시 와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예능과 기능적 무형유산 역시 우리가 소중히 지켜가야 할 가치 있는 전통문화임에 틀림없다. 상대적 우위까지는 아닐지라도, 유형유산과의 형평성 논란에서 무형유산이 좀 자유로울 수 있도록 문화재 정책의 재고가 요망되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