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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꽃다운 열아홉 소녀는 종잇장처럼 얇은 대오리(가늘게 저민 대나무 껍질)를 몇 날 며칠 엮다 보면 상자가 되는 일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40여 년이 흘러 자신이 중요무형문화재 채상장 기능보유자가 될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을 터. 어느덧 나이가 반백이 넘은 장인은 아직도 그때 그 시절의 소녀처럼 곱다. 쉼 없이 엮어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형형색색 고운 채상처럼 말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3호 채상장 명예보유자 서한규 선생의 둘째 딸인 서신정 선생은 툇마루에 앉아 뭉뚝한 손에 대오리를 쥔 아버지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여 곁에 앉아 거들기 시작했다. 워낙 무뚝뚝한 성품인지라 반가운 내색 한 번 없었지만, 아버지는 딸의 야무진 손재주를 이내 알아보고 차근차근 일을 가르쳐주었다.
“상자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1백여 과정을 거쳐야 하니 이 일이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예로부터 자연스레 철저한 분업화가 이루어졌는데, 우리는 일곱 자매가 모두 아버지의 채상 일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지요. 그러다 제가 일을 배운 후 아버지는 통대나무를 쪼개어 말리고, 종잇장처럼 얇게 대오리를 뜨는 일을 도맡으셨고, 저는 대오리에 염색하고 엮어 상자를 만드는 일을 했어요.”
대오리에 쪽이나 치자, 소목 등의 재료로 색색의 물을 들여 다양한 무늬를 수놓듯 만든 상자를 일컫는 채상은 가구가 보편화되지 않은 조선시대에는 옷이나 장신구 등을 담는 용도로 쓰였다. 죽세공품 중에서도 가장 정교한 기술을 요하는지라 귀하게 팔려 궁궐이나 재력을 갖춘 양반가에서나 쓸 수 있었는데,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 민가에서도 혼수품 등 귀한 물건을 담는 용도로 집집마다 두곤 했다. 예로부터 좋은 대나무가 많이 자라 죽세공품으로 유명한 전라남도 담양에서 나고 자란 서신정 선생은 지금도 죽녹원 내에 공방을 두어 늘 푸른 대나무밭을 풍경 삼아 살아간다. 서한규 선생이 그러했듯 서신정 장인이 만드는 채상의 재료도 바로 담양에서 나는 대나무다. 특히 수분이 적어 단단한, 3년 정도 자란 겨울 대나무를 고집한다.
“대나무 상자를 세간으로 쓴 이유는 통풍이 잘되어 곰팡이가 생기지 않고, 오래 담아두어도 냄새가 배지 않는 대나무의 특성 때문입니다. 옷이나 귀한 물건을 담아두기에 대나무가 제격인 거지요.”
담양의 유명 관광지인 죽녹원에 머물다 보니 자연히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장인은 요즘 젊은이들이 전통 공예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잊히지 않고 후대로 이어지려면, 현대인의 생활 속에서 자주 쓰는 ‘생활 공예품’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요즘에는 손가방이나 부채, 보석함 등 다양한 죽세공품을 만드는 일도 함께 한다. 전통 문양과 전통 기법의 채상 작업과 전시 준비는 물론 현대인의 삶에 필요한 죽세공품 작업을 병행하느라 늘 분주하고 고되기도 하지만, 좋은 스승인 아버지와 채상장 이수자인 남편, 채상 일을 물려받겠다는 젊은 아들이 곁에 있어 서신정 선생은 처음 대오리를 잡던 그날처럼 즐겁기만 하다.
글 박유주 기자 | 사진 김재윤
문의 한국로얄코펜하겐㈜(02-749-2002)
본 기사는 행복이 가득한 집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