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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7월 - 벽사의 첨병, 영제교의 천록 (천록필함)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3-12-27 조회수 : 8621

 

각 궁궐의 정문을 들어서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건축물이 금천 위에 놓인 금천교(禁川橋)다. 이 석교의 난간기둥, 홍예, 어구 축대 등에 다양한 동물상이 조각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들 중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경복궁 영제교 주변의 네 마리 신수다. 이 신수는 과거 한 때 사자로 잘못 알려졌었는데,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李德懋)가 남긴 다음과 같은 기록에서 이 신수의 정체가 밝혀진다.

 

“경복궁 어구 곁에 누운 석수(石獸)가 있다. 얼굴은 새끼 사자 비슷한데 이마에 뿔이 하나 있고 온 몸이 비늘에 덮여 있다. 새끼 사자인가 하면 뿔과 비늘이 있고, 기린인가 하면 비늘이 있는 데다 발이 호랑이 같아서 이름을 알 수가 없다. 나중에 상고해 보니, 중국 하남성 남양현 북쪽에 있는 종자(宗資)의 비(碑) 곁에 두 마리의 석수가 있는데, 그 짐승 어깨에 하나는 천록(天祿)이라 글이 새겨져 있고, 다른 하나는 벽사(辟邪)라 글이 새겨져 있다. 뿔과 갈기가 있으며 손바닥만 한 큰 비늘이 있으니 바로 이 짐승이 아닌가 싶다. …남별궁에도 이런 짐승 하나가 있는데 바로 경복궁에서 옮겨 온 것이다.” (『청장관전서』 「이목구심서4」)

 

 

한편,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유득공이 1770년 봄 박지원, 이덕무와 함께 한양성을 유람하면서 느낀 인상을 기록한 글에도 영제교 신수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1770년 3월 6일 경복궁에 들렀다. 궁의 남문(광화문) 안쪽에 다리가 있는데, 다리 동쪽에 천록 두 마리가 있고, 다리 서쪽의 것은 비늘과 갈기의 꿈틀거림이 완연하다. 남별궁 뒤뜰에 등에 구멍이 파인 천록이 있는데, 이와 똑같이 생겼다. 그런 관례가 없음에 비추어 필시 다리 서쪽에 있던 것들 중 하나를 옮겨 간 것이 틀림없다.” (『영재집』 「춘성유기」)


이상의 기록을 통해 영제교 사방에 엎드려 어구 바닥을 응시하고 있는 신수가 천록(天祿)임이 확인된다. 천록의 도상적 특징과 성격에 관해서 『후한서』 「영재기(靈宰紀)」에서는 뿔 하나를 가진 것이 천록이고, 둘을 가진 것을 벽사라 했고, 『십주기(十州記)』에서는 취굴주에 벽사와 천록이 있는데, 사악한 것을 막아 없애준다고 했다. 영제교 주변의 천록 중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혓바닥을 길게 내밀고 있는 놈이다. 이 모습은 조선 석공의 해학 정신이 만들어 낸 것으로 보기 보다는 천록의 도상적 특징을 성실히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천록과 같은 종류의 신수인 벽사의 도상적 특징 중 하나가 혀를 길게 내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궁궐을 설계한 사람들이 영제교 주변에 천록을 배치한 것은 외부에서 침입한 사귀가 천록을 보고 놀라 달아나게 해서 내부 공간을 상서로운 공간으로 유지하려는 묘책이었던 것이다.


※ 허균, 「궁궐장식4-정전 진입 과정의 신수들」
[월간 문화재, 2011년 10월호]에서 발췌

 

 

 

 

 

천록은 상상 속 벽사의 동물로 노루를 닮은 긴 꼬리와 볼록한 두 눈, 납작한 코, 그리고 삼지창같은 외뿔을 지니고 있으며 몸 전체가 억센 비늘로 덮여 있다. 경복궁 영제교 석축 위에 조각된 이 천록은 왕의 공간으로 들어올지도 모르는 삿된 기운을 경계하기 위해 다리 밑을 주시하고 있다. 경복궁 영제교는 흥례문과 근정문 사이의 금천에 놓인 다리로, 아래로는 명당수 금천이 흐르고 있는데 이는 대궐에 들어오는 신하들의 마음을 씻고 궁 밖으로 나가는 임금도 백성을 위하여 마음을 씻으며 또한 액을 막아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근정문 앞을 흐르는 물이 이처럼 왕의 공간으로 들어오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구실을 하였다면, 돌란대(돌난간) 끝 엄지기둥의 이무기 형상의 돌짐승이 다리를 지키는 역할을 하고 물길을 통해 잠입하는 잡귀를 막기 위해 둔 것이 영제교 바깥쪽으로 설치된 네 마리의 천록이다. 몸 전체를 뒤덮은 비늘과 겨드랑이의 불갈기, 물길을 향해 크게 뜬 눈과 날카로운 발톱이 용맹스러움과 동시에 이빨을 내놓은 웃음이나 혀를 날름 내민 장난기 어린 표정 등은 친근함을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