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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2013년 07월 - 한옥, 바람의 길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3-12-27 조회수 : 4949

 

 

장마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 요즈음 같은 여름 날씨에 에어컨이나 선풍기와 같은 냉방기에 의존하지 않고 여름을 나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우리 조상들은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고 그 요령으로 삶에 멋과 여유를 더함과 동시에 인내를 배우고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했다. 그러나 과학과 문명의 발달은 온갖 기술의 혁신으로 더위를 물리치기 위한 상품을 개발해 내었고, 그 결과 우리 현대인들은 더 이상 자연에 순응하며 무더운 여름 찜통더위를 견뎌낼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 대신에 우리의 몸과 마음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에 점점 서툴러졌고, 우리는 냉방기나 냉방시설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견뎌내기 어려울 만큼 그 의존도가 높아져 있다. 그러나 요즘 여름에 접어들면서 국가 전체가 전력난에 대한 위기가 고조되고 있으며, 8월부터는 한 달간 대규모 공장에서는 전력수요가 많은 시간대에 전기 사용량을 3~15%로 유지하라는 의무조건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생산라인뿐만 아니라 찜통 사무실에서 인내심 있게 버티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처럼 치솟는 전기 요금과 어이없게 발생한 전력난 때문에 우리는 더위를 물리치기 위한 과학과 문명의 온갖 상품들을 곁에 두고도 마음 놓고 사용하지 못하고 고심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의 삶은 과거의 결과이면서 미래의 시작이다. 이쯤에서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한옥에서 냉방기의 도움 없이도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자연과 소통하면서 무더운 여름날의 찜통더위를 견뎌낼 수 있었던 비밀스런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의 조상들이 꾸며 놓은 한옥의 누마루나 정자를 보면서 문화적 갈증도 해소하고, 우리 조상들 특유의 멋과 여유로 무더운 여름을 느리게 견디고 즐기면서 극복해나가던 지혜를 엿보는 것만으로도, 현대인의 조급하고 초조한 삶의 병폐를 치유하는 근원적인 시작점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한여름에 한옥에서의 여름나기 공간으로는 대청과 누마루가 있다. 그리고 경치 좋고 시원한 계곡이 어우러진 자리에 ‘정자’라는 휴식 공간이 있다. 이들 공간은 나무로 만든 마루로 꾸며져 있는데, 습기도 피하고 통풍이 잘 되기 때문에 여름철 주거 공간뿐만 아니라 손님들을 맞이하는 공간으로도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한여름 나무널로 꾸며진 대청에 누워 본 사람들은 등으로 전해지는 그 시원함에 감탄하게 된다. 바람 한점 없는 무더운 날에도 대청마루에 가만히 누워있다 보면, 바람이 살포시 콧등을 스쳐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그리고 여름날 시골 마을에 가 보면 쉽게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가 바깥 대문칸에 침상을 놓고 오순도순 둘러앉아 쉬고 있는 어른들의 모습이다.

 

무더운 여름날, 이와 같이 휴식과 소통의 장소로 선택된 대문칸의 침상이라는 공간은 우리의 전통 한옥에서 대청마루와 그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는데, 더위를 식히기에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공간이 된다. 집 앞 들판에서 대문을 따라 들어 온 시원한 공기는 운동에너지를 발생시키고, 다시 마당과 건물 안에서 정체된 공기의 상승기류를 타고 대청마루를 통해서 마당으로 빠져나가는 순환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바람은 다시, 마당에서 가열된 태양열이 대청마루 뒤편으로 작게 만든 바라지창을 통해 뒤뜰 장독대로 흘러나간다. 한옥은 이와 같은 구조로 자연 바람이 실내를 지나가도록 유도되면서 시원한 바람을 선사해 주고 있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한옥은 그 공간구성이 자연과 어우러지며 끊임없이 자연과 소통할 수 있도록 조화롭게 친환경적으로 구성되어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자연을 거스르지 않음으로서 수용되는 멋과 여유와 배려도 품고 있다.

 

 

 

 

한옥의 배치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와 같이 자연과 벗 삼아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려 했던 우리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대부분의 주거용 공간은 태양에 맞춰 동남향을 바라보고 장방형으로 배치했으며, 산을 등지고 남쪽으로는 전망이 트인 곳을 명당으로 선택했다. 지붕 끝에는 처마를 만들었는데, 이 때문에 태양 고도가 높은 여름에는 한낮의 뜨거운 햇볕이 방 안에 들지 않아 시원하며, 겨울에는 낮게 비치는 햇빛이 방 안 깊숙이 들어와 일조량이 적은 시기에 공기를 데워주고, 창호지에 비친 햇살은 기나긴 겨울을 쾌적하게 해주는 역할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또한 뒷 건물은 앞 건물보다 높게 기단을 만들어 태양 고도가 낮은 겨울에 집 안 가득 햇볕이 들게끔 했다. 이 밖에도 서양의 건축물과 달리 한옥은 온돌 난방을 이용한 겨울 공간과 대청마루를 이용한 여름 공간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점도 매력적이다. 대청 사이에는 불발기창을 달았는데 천장에 매달면 하나의 넓은 공간으로 사용 할 수 있도록 실용적으로 꾸며 놓았다. 이 문은 더위와 추위를 다스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평소에는 한쪽 문으로만 사용하였지만 여름이면 두 문을 모두 접어들어 올려 천장의 등자쇠에 걸어 놓으면 넓은 공간, 시원한 공간으로 변신하게 된다. 더운 여름이나 제사를 치러야 할 때, 천장에 단 등자쇠에 문을 걸어 공간을 넓게 이용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하회마을 남촌댁처럼 대청의 분합문을 천장의 등자쇠에 걸 정도의 공간이 나오지 않는 경우에는 처마 아래쪽으로 걸 수 있게 등자쇠를 달기도 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등자쇠를 천장에 걸 때보다도 이처럼 처마에 걸 경우에 하얀 한지를 바른 창문이 추녀까지 가리기 때문에 오히려 대청이 훨씬 밝고 넓어 보이고, 시원함을 시각적으로 더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한지가 주는 또 다른 기능적 매력의 발견이다.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이면 경주 안강 독락당의 계정(溪亭)이 생각난다. 무엇보다 한옥과 자연의 만남, 그 합일의 궁극을 보여 주는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맑고 고요한 수면에 비친 누각의 물그림자와 산바람을 맞으며 푸른 숲 사이로 계곡물이 넘쳐흐르는 풍광이 이름만큼이나 아름답다. 어떻게 건물을 지어야 자연과 가장 잘 어울리는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건물이다. 옥산정사 뒤편의 계정을 중심으로 한 영역과 자계천의 어울림은 또한 압권이다. 살창으로 된 옥산정사 옆 담의 일부는 계류와 시원한 산바람을직접 느끼고, 자연에 순응하며 교감하고자 했던 회재 이언적 선생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한편, 우리 조상들은 삼베옷을 입고, 여름을 맞이하는 단옷날, 시원하게 여름을 지내라고 주고 받던 부채, 그리고 대나무의 절개에 인격을 부여하며 이름 붙여 준 죽부인, 계곡에 직접 나가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식혀 주던 탁족(濯足)으로 자연을 이용하여 여름을 즐겼다.

 

또한 마을의 커다란 둥구나무 아래 모여 시원한 수박 한 통 썰어 함께 나누면서 매미소리에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식히며 기를 보충하였다. 옛날에도 40도가 넘는 찜통더위가 있었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요즘 우리들과 같이 시간에 대한 초조함이 없었기 때문에 그 느긋함과 여유로움으로 자연과 벗하며 더위를 즐기며 극복해 나가는 데 무리가 없었던 것 같다. 요사이 장마와 무더위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생활의 편리함을 좇다 보니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자연을 한껏 품고 살 수 있는 한옥이라는 주거공간은 어느새 그리움이 되어 버렸다. 마찬가지로 자연의 멋과 풍류를 즐기고 사색하며 자연과의 소통을 즐김과 동시에 뜻이 맞는 소중한 친지와의 소통을 위해 사랑받던 정자나, 부채하나 들고 자연바람이 살갗을 달콤하게 간질이는 여유로움을 즐길 누마루와 대청마루 또한 없지만, 조상들에게서 여유와 기다림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다면 무더운 여름을 훨씬 편안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글˚서정호 (공주대학교 문화재보존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