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내 모친의 고향은 평안도 철산이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 6.25전쟁을 겪고 척박한 강원도에서 유소녀기를 보낸 어머니께서 어린 시절 기억으로 들려주시던 일들 중 하나에 ‘광목 바래기’가 있다. ‘바래기’는 표백(漂白)을 의미하는 북한말이라고 하는데 잿물에 광목을 삶아서 볕 좋은 날 개울가 냇물에 헹구어 널찍한 바위 위에서 말렸다 널었다를 반복하여 누렇게 짜진 광목이나 생무명을 옥양목처럼 하얗게 만드는 일이다. 이러한 ‘바래기’는 목면류 직물뿐만 아니라 마직물 제작 공정에서도 볼 수 있다. 부친과 조모의 고향이 안동인 관계로 어린 시절 안동포를 짜시던 할머니의 고단했던 길쌈 얘기는 마치 ‘그때를 아십니까’ 의 시리즈물이 되어 한국복식사를 전공하게 된 손녀의 기억 속에 자리했다. 6월경 햇삼을 수확해서 7월이면 삼복더위에 삼베를 짜기 위해 찌고, 말리고, 바래고, 째고, 삼고, 날고, 매고, 짜고, 삶는 등의 긴 공정을 하신다는 이야기. 이 가운데 ‘계추리 바래기’라는 순서는 삼의 속살이 되어버린 ‘계추리’를 햇빛에 말리는 과정이다. 이 과정도 표백과 같은 탈색 과정이겠으나 색은 불그스름하게 변하고 삼의 강도는 높아져 삼째기를 하기 좋게 만든다 하셨다. 드디어 옹기종기 모인 마을 아낙들이 저마다 앞니로 마른 계추리를 똑똑 쪼개고 다시 손톱으로 얇게 편을 떠서 허벅지에 피가 나도록 삼을 삼으면 길쌈을 통해 삼베한 필을 얻는 과정으로 들어간다는 것. 다시 이 삼베 한 필은 짚을 태워 만든 잿물에 삶아 마지막 표백 과정을 한 번 더 거쳐야 다음 손질로 넘어간다는 스토리였다.
표백 이후 옷감이 거치는 과정은 일명 ‘푸새’라고 하는 풀 먹임 작업이다. 2011년부터 국내 사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근대섬유유물 재현 작업을 진행하면서 실제로 우리 조상들이 일상적으로 입고 사용하던 복식품과 생활소품들의 면면을 살펴 볼 수 있었다. 백색 원단들의 대부분은 잿물이나 모아둔 쌀뜨물에 삶겨져 표백되고 쟁치기[풀을 먹인 명주나 모시 따위를, 재양틀에 매거나 재양판에 붙이고 반반하게 펴서 말리거나 다리기] 용도로 삭혀진 수년 묵은 곡물 성분의 풀로 손질된 사례들이 발견된다. 정성스럽게 기초화장으로 단장을 마친 듯한 저고리며, 속바지, 이불 호청 들을 만나는 일은 왠지 모를 경건함과 숙연함을 갖게 한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이별’과도 같은 감회 때문이 아닌가 하는데 ‘그 때 좀 더 익숙하게 겪어 두고 남겨둘 것을...’하는 아쉬움이 더운 열기가 되어 가슴에 드리워진다. 우리 역사에서 조선후기와 일제 강점기 초기 무명이나 삼베, 모시와 같은 의료(衣料)들은 농가의 가내 수공업을 통해 확보했다. 국권 피탈 후 1917년 면직물을 짜던 조선방직주식회사가 일본인 자본에 의해 설립되어 광목이 등장하였다.
가내 수공업을 통해 얻은 무명이든 공장을 통해 얻은 광목이든 임금님 진상품이던 안동포가 되었든 원단이 완성되면 옷감이나 침장용 의료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표백과 풀 먹임이라는 작업을 가정주부들은 세탁과 함께 일상사처럼 해온 시절이 있었다. 대학 시절이던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할머니가 풀을 먹이거나 홍두깨질을 하는 모습을 단독 주택에 살던 나는 가끔씩 보았던 기억이다. 백색으로의 표백은 기능적으로는 흔히 질료의 표면에 백색광을 향상시켜 열 흡수율을 낮추어 표면 온도를 떨어뜨려 주는 것인 만큼 태양광이 강하고 일사량이 많은 여름철 옷감의 색으로는 1순위에 꼽힌다. 푸새 작업은 원단 표면과 내부 조직에 코팅(coating)을 함으로써 강도를 높여 주고 오염도 방지하여 내구성은 물론 살갗에 닿는 쾌적감도 높여주는 한마디로 쿨~한 작업에 속한다. 원전3기 가동 정지로 인해 올여름은 사상 초유의 대정전이라는 블랙 아웃(Black Out)이 예견된다.
이러한 전력 기근 상황을 ‘에너지 보릿고개’라고도 부르던데 옛말에 ‘보릿고개가 태산보다 높다’고 하니 2013년도 여름에 불어 닥칠 전력난은 태산 같은 쓰나미가 몰려오는 것은 아닌지 사뭇 긴장감이 감돈다. 며칠 전 강원도 강릉시 오죽헌 근처의 동양자수박물관 소장 근대 섬유 유물을 조사하러 가는 출장길. 6월에 시작되는 이른 장마 소식이 있어서 그런지 아스팔트의 지열과 초여름 뙤약볕으로 승용차 차량 외기 온도는 벌써 31℃를 가리키고 있었다. 차량 실내온도는 법정 실내 온도인 26도로 고정. 가끔씩 차창을 내려 산소를 공급해주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도 ‘냉방기를 가동한 채 출입문을 열어 놓고 영업하는 행위에 과태료를 부과할 것이라는 규제를 상기하게 된다. 횡성 휴게소에 잠시 들러 점심을 해결하려는 참이였다. 함께 상행하던 일행들과 ‘냉면’을 메뉴로 선택하고 전국각지에서 몰려드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인파들의 면면을 무심히 바라보고 앉아있던 중 나의 시선을 잡는 모시 중의에 고의 차림의 노옹. 백색의 모시에 빳빳하게 풀을 먹여 다려진 날선 실루엣. 그리고 속살이 비쳐도 민망하지 않은 정갈한 차림의 씨쓰루 룩(seethrough look). 거기다 속살과 옷감 사이에 메리야스가 아닌 등등거리-등나무의 얇은 줄기를 이용하여 그물처럼 엮어서 만든 여름용 속옷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눈길이 어색하지 않게 머물다 사라지게 한다.
물론 긴 저고리가 덮고 있는 팔뚝과 손목 사이의 등토시도 세트로 시원함을 몰아주고 있다. 구간부와 사지 말단에 제대로 통기가 되도록 멋진 수공예품으로 장식 아닌 장치를 하고 계신 모습. 손에 부채라도 하나 드셨다면 전통 여름패션 종결자가 되셨을 텐데..합죽선은 차에다 두셨던 것인지.
그 노옹의 패션을 현대의 우리가 흉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또는 흉내 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리 오래 되지 않았던 시절, 한 벌의 여름 옷을 지을 수 있는 모시나 삼베 한필을 얻기 위해 길쌈하느라 눈물 꽤나 흘렸을 할머니들과 삶고 풀 먹이고 다듬는 등의 옷감 손질로 하루가 짧았을 부녀자들의 모습을 되풀이 하라면 나부터 반대다. ‘지혜롭게 여름을 날 수 있는 친환경적인 전통문화이니 고수해라’라고 외치는 무조건적인 수구파(守舊派)가 될 수 없음도 안다. 그러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이 무더운 여름에 에너지를 조금 덜 쓰며 쾌적하게 일상을 보내려면 말이다. 추운 겨울 따뜻한 온돌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먹었다던 ‘냉면’은 보릿고개를 넘던 가난했던 시절의 구황작물(救荒作物) 중 하나인 메밀로 만든 것이다. 어느새 여름철 대표 음식이 되어 대규모 냉장시설과 자동 설비들로 무장된 고속도로 휴게실의 식당코너에서 규정된 온도로 맞춰진 냉방기 앞에서 문을 꼭꼭 닫아 둔 채 허기진 배를 채우려 기다리는 바쁜 현대인들을 마주하고 있다.
왠지 자연에 역행하고 있는 우리들을 만들고 있다는 염려가 드는게 사실이다. 블랙 아웃 시대는 지나치게 도를 넘으며 편한 것, 빠른 것, 쉬운 것들에 익숙해지면서 자연에 순응하며살던 옛 어른들의 일상을 암전(暗轉) 시킨 우리들이 자초한 것이다. 필요한 것은 온도 단속이나 전력 규제가 아니라 ‘지혜’라는 가치를 명화(明化)할 줄 아는 마음 단속, 의식 규제부터 시작해봐야 하지 않을까. 블랙 아웃(Black Out)이라는 에너지 수급 비상사태가 지금은 거스르기 버거운 강물의 흐름으로 보일지 모른다. 물줄기를 바꾼다는 것은 또다른 거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상들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피할 수 없었기에 오히려 살뜰하게 정성을 다했던 옷감 손질이나 멋을 내는 순간에도 ‘본질은 유지하고 기능은 살려주는 정신’은 흉내 내볼수록 생활에 더 이득이 되는 가치 있는 생각이 아닐까. 화이트 온(White On)하게 마음을 단속하고 우리 모두 이 여름을 무사히 지내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